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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27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6-27 조회수 : 319

백인대장의 단순하고 순수한 무사(武士)적 태도! 
 
 
이스라엘 민족은 신앙에 살고 신앙에 죽는 신앙의 민족이었습니다. 
하느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든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말씀은 곧 법이었고, 지혜였고, 국가적 희망의 근거였습니다. 
 
또한 하느님 말씀은 백성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삶의 기초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명을 불어 놓어주는 힘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의 말씀과 신앙 안에서 성장해왔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중요한 이스라엘의 신앙은 세월이 흐르면서 고착화된 틀안에 갇혀버리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성장이 가로막힌 율법과 성전과 예식 안에서 빛을 바래기 시작했고, 퇴보일로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있다는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던 이스라엘 민족은 아이러니하게도 하느님과 가장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제들에게 있어 신앙은 일종의 생존 방식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율법학자들에게 있어 신앙은 오만과 논쟁의 도구였습니다. 
바리사이들에게 있어 신앙은 거드름 피우고 잘난체 하는 구실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은 그릇된 지도자들에게 너무 종속되어 있어, 어떤 것이 참된 신앙이요, 어떤 것이 그릇된 신앙인지 분간하는 식별력을 상실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앙은 그저 현세적·육체적 보호를 받는 피난처가 되고 말았습니다.
신앙이 살아계신 주님과의 생생한 만남이 되지 못했습니다. 
신앙이 사랑이신 주님과의 인격적 만남이라는 진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신앙이 구원이신 주님으로부터의 은혜롭고 과분한 초대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능력을 상실해갔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등장하셔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은 이미 은혜로운 초대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진리를 향한 귀를 닫아버렸기에, 불순명으로 인한 영적인 나병에 걸리고 만것입니다. 
 
그러나 백인대장의 태도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이 아니라 ‘제외된 자’ ‘소외된 자’라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백인대장을 한없이 겸손하게 자신을 낮춥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간절히 청합니다. 
그는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이스라엘의 그 어떤 신앙인들보다도 진실된 신앙, 깊은 신앙을 지니고 있었고, 거기에 더해 따뜻하고 자상한 마음, 깊은 인간미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마태오 복음 8장 6~8절) 
 
주님은 인간의 비위를 맞추려고 인간에게 접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백인대장의 겸손한 말처럼, 인간이 자신의 집을 떠나 주님께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교회 안에 있으면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단죄하지만, 그들이 오히려 내적으로는 교회 안에 속하고, 우리가 오히려 교회 밖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백인대장의 단순하고 순수한 무사(武士)적 태도는 매일 우리가 봉헌하는 미사 때마다 되풀이되며 우리의 정신을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치유되는 순간은 우리 스스로 자신의 병세를 자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스스로의 상태를 고백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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