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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5일 _ 이상용 요한 크리소스토모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7-05 조회수 : 375

“사랑 앞에서는 두려움도 어쩔 수 없다”


어떤 것이든 그것이 ‘진실’이라고 남이 믿게 하려면 그에 합당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세상의 창조주이시고 진정으로 살아계신 분’이심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실’을 넘어서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를 다른 사람들이 믿고 받아들이게 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역시 ‘증거’가 필요할 것입니다.

‘내가 믿으니 너도 믿어보라.’라는 반강제적 권유는 신빙성이 없습니다. ‘일단 한번 믿어보라.’라는 주먹구구식의 설명 또한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이론을 통한 ‘주입식 해설’은 깊이 있는 믿음으로 발전하지 못하거나 믿음의 단명을 가져다줄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순교자들의 삶, 특히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삶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온갖 고문과 회유 속에서도 김대건 신부님은 하느님을 섬기는 참된 믿음 안에 지금까지 맛볼 수 없었던 기쁨과 행복이 있음을 증언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유교적 전통과 관료주의 안에서 신부님의 증언은 세상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교(邪敎)요 사학(邪學)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신부님은 모든 세대와 시대를 관통하며, 세상 누구도 논박할 수 없는 증거, 즉 ‘순교’의 월계관을 보여주셨습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박해도 고문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 가운데 황금만능주의와 세속주의가 가장 무섭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목숨보다 더 위에 존재합니다. 세속적 지위와 권력과 명예가 신앙을 뒤로 밀어냅니다. ‘내세는 조금 뒤에 생각해도 될 일이고, 일단 현세가 편안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생활 속에 드러납니다. 물질적인 것과 세속적인 안위가 보장되지 않음으로 당장 불편함에 직면하는 것이, 나아가 이런 것들을 잃는 것이, 박해와 고문보다 더 무섭습니다. 세상적인 것에 ‘죽기 살기’로 살아가는지도 모르는 채, 신앙의 증거에는 무뎌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결국, 현시대가 우리를 고문하듯이 조목조목 따져 물을 것입니다. ‘신앙이 돈을 가져다주는가?’, ‘믿음이 대학을 합격시켜 주는가?’, ‘확신이 진급을 보장해주는가?’, ‘기도가 일상생활의 안위를 보장해 주는가?’ 우리도 김대건 신부님처럼 세상의 쓰디쓴 문초에 논박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겠습니다.


“부디 마음을 헛되게 먹지 말고 밤낮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빌어, 마귀와 세속과 육신의 3구(三仇)에 맞서서 박해를 참아 받으며,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그대들의 영혼을 위한 큰일을 경영하십시오”(1847년 8월 말 김 안드레아 신부님 옥중편지 중).


이상용 요한 크리소스토모 신부(교구 성소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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