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7월 12일 _ 박현창 베드로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7-12 조회수 : 375

제목 ‘열매 맺는 옥토의 과정’

(마태 13,1-23)


가족들의 예기치 못한 방문을 미련 없이 뒤로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고자 애쓰는 이들을 가리켜 오히려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라 말씀하신 예수님(마태 12,50 참조). 


그날 예수님은 또 다른 ‘새 가족들’을 찾아 잔잔한 호숫가로 나가십니다. 그리고 당신께 모여든 군중에게 ‘하늘 나라의 신비’를 ‘씨앗과 그가 자랄 수 있는 여러 토양’에 빗대어 말씀하십니다. 이를 통해 본말을 깨닫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엇이 핵심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도 생겨납니다. 군중 가운데 예수님의 가르침을 신앙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단순히 호기심이나 외형적인 표징만을 뒤쫓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고 네 가지 서로 다른 토양은 뿌려진 말씀을 수용하는 사람들의 처지입니다. ‘마음 밭’의 상태가 누구에게나 똑같지는 않습니다. 씨가 길에 뿌려진 것은 말씀을 듣기만 하였을 뿐 깨달음조차 얻지 못하여 악한 자에게 말씀을 모조리 빼앗기고 마는 사람의 상태입니다. 씨가 돌밭에 뿌려진 것은 처음에는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깊게 뿌리 내리지 못하여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루카 8,13) 사람의 처지입니다. 씨가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것은 말씀을 듣고 잘 생활하다가도 “세상 걱정과 제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는”(마르 4,19) 사람의 형편입니다. 씨가 옥토에 떨어진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착한 마음으로 듣고 깨달아 간직하여’(마태 13,23; 루카 8,15 참조) 인내로써 수십 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의 전형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네 가지 토양 가운데 ‘주로’ 어디에 속할까 생각해봅니다. 세례 받은 후 1~2년 이내에는 냉담의 유혹을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한, 신앙에 안착했다 하더라도 신자들이 신앙과 삶을 조화롭게 유지하기엔 매일 ‘피로 사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신앙이 있지만 갈수록 근심 걱정은 늘어만 가고, 한 주간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결국 다른 것에서 재미와 대리만족을 찾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두 번째 토양(돌밭)과 세 번째 토양(가시덤불)이 현재 우리의 형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희망도 자리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수십 배 열매 맺게 하는 옥토는 처음부터 그리된 것이 아닙니다. 빈약한 땅 위 한 줌의 흙에서 시작하여(메마른 땅), 그다음은 흙과 자갈이 뒤섞인 투박한 밭으로(돌밭), 이후 지속적인 경작을 통해 가시덤불도 함께 자랄 만한 밭으로(가시덤불), 그리고 가시덤불의 악전고투를 겪어내며 서서히 기름진 땅으로(옥토) 변해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느님 말씀의 씨앗을 품고 있는 우리는 어느 상태에 영원히 멈춰버린 것이 아니라, 열매 맺는 옥토가 되기 위한 ‘의미 있는 몸부림의 과정’에 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글 l 박현창 베드로 신부(갈곶동 본당 주임)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