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성공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늘 좋은 일만 생겼던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끔찍한 실패도 경험했고, 그 무엇으로도 치유될 수 없을 것 같은 아픔도 있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수렁에서 헤맸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시간을 이겨냈기에 그들은 ‘성공’이라는 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성공’은 단순히 세상 사람의 부러움을 받는 정도의 가치가 아닙니다. 고통과 시련을 이겨낸 가치의 결실이기에 그 어떤 것보다도 커다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언젠가 어떤 분의 이런 고백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기적이에요.”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풀리는 기적을 체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계가 없는 일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을 믿는 만큼 자신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힘든 시간이 찾아와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극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기적을 사는 것이 됩니다.
기적을 살고 있습니까? 나를 창조하신 하느님을 믿는다면, 나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 순간 기적이 내 곁에 다가올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편안과 안락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때로는 세상의 것을 과감하게 잘라버려야 하기도 합니다.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말해 보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리에 커다란 종기가 났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이 종기를 제거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종기를 가만히 두는 것이 평화일까요? 아니면 칼로 이 종기를 제거하는 것이 평화일까요? 내 몸을 불편하게 하는 종기를 제거하는 것이 평화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칼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주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잘라버릴 수 있는 칼을 주십니다. 그래서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명령하십니다.
속된 이익을 위해 살다가 영원한 죽음을 당하는 것보다, 하느님을 위해 죽어서 영원히 사는 편이 훨씬 낫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선순위에 따라 사랑하며 그것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는 이들을 주님께서는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늘 가슴 깊이 담으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이사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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