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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14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7-14 조회수 : 357

7월14일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이사야 7,1-9
마태오 11,20-24 
 
티끌 같은 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얼마나 강렬하고 뜨거운 것인가? 

갈릴래아 호수 연안에 자리 잡았던 명품 도시 코라진, 베싸이다, 카파르나움이 오늘 예수님으로부터 단체로 혼쭐이 나고 있습니다.  
 
이유는 예수님께서 유난히 공들였던 도시, 자주 들르셨던 도시, 기적을 많이 일으키셨던 도시들이었건만, 끝끝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대보다 훨씬 앞선 시기, 또 다른 잘 나가던 도시, 그러나 끝끝내 회개하지 않았던 도시들이 또 있었습니다. 
 
팔레스티나 북쪽에 자리잡은 티로와 시돈이라는 도시가 대표적인 도시들이었습니다.
경제적 부를 이루다보니 하느님 두려운줄 모르고 교만이 하늘이 찌르던 도시들이었는데, 그 결과 쫄딱 망해 지금은 유적지로 남아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 역시 한때 크게 번성했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우상 숭배에 깊숙히 빠져들어갔습니다.
악하고 음탕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지금 지구상에서 그 자취가 지워져버렸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으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듬뿍 받은 도시들이 그 숱한 은총들을 거부했습니다.
그냥 무상으로 주시는 은총과 축복을 그저 감사하면서 받아들이면 됐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들은 굴러 들어온 복을 자기 발로 차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시는 회개, 회심을 위해서는 칼같이 단호한 결기가 필요합니다.
내일이나 다음 주가 아니라 바로 오늘, 이 순간, 이 자리에서의 회개와 회심이 필요합니다. 
 
또한 회개, 회심은 평생이 단 한번이나 두번이 아니라, 매일 아침마다, 아니 매 순간마다 되풀이되어야 마땅합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 그리고 우리 인간의 나약함과 보잘 것 없음을 기억한다면 시시각각 되풀이되는 회개, 회심이 필요합니다. 
 
나 자신의 변화와 성장의 가능성을 굳게 신뢰하며, 또 다시 회개, 회심이라는 멀고 먼 여정을 새롭게 시작해야겠습니다. 
 
회개, 회심의 주체가 나 자신인 줄로 알았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주인공은 하느님이셨습니다.  
 
하느님의 크신 자비, 뜨거움, 강한 구심력, 흡인력, 중력으로 인해 자연스레 우리의 발길이 자동으로 그분께로 돌아서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서 지상 순례 여정 중에 마지막 순간까지 노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과제는 회개, 회심입니다. 
 
회개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깨달임입니다.
한 가지를 깨달았다는 것은 이 세상 그 어떤 값진 보물을 얻는 것 보다 더 소중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깨달음이 목숨 다하는 순간까지 계속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제가 체험한 한 가지 깨달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정말 행복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불붙는 생지옥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아직 죽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큰 마음 먹고 한번 죽어 보십시오.
재물에 죽고, 자리에 죽고, 탐욕에 죽고, 집착에서 죽고, 거짓에 죽고 위선에 죽고... 
 
그렇게 부단히 한번 죽어보십시오.
우리가 진정 죽는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천국문이 열리고, 새하늘 새땅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 
 
꼭 재물이나 자리 뿐만 아니라 마음에 안드는 직장 상사에게 죽고, 깊은 상처를 주고 받은 동료에게 죽고, 나 자신에게 죽고, 또 죽어야 합니다. 
 
또 다른 중요한 깨달음이 하나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먼지 같은 나를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는 얼마나 크고 오묘한 것인가?
티끌 같은 나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얼마나 강렬하고 뜨거운 것인가?’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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