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유명한 미인들이 있습니다. 양귀비, 클레오파트라…. 그런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1900년대 테헤란에 살았던 이란 공주 ‘타즈 살타네 카자르’입니다. 당시 그녀가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페르시아 귀족 남성 46명이 그녀에게 청혼했는데, 그중 13명이 거절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이 정도였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혹시 정보가 있을까?’ 하면서 ‘타즈 살타네 카자르’를 찾아보니 나옵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이 아니라, 끔찍한 외모의 남성입니다.
그녀는 키가 작고 발목이 굵었으며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양말을 신었습니다. 여기에 엉덩이 위로 치마 밑단이 꽃부리처럼 활짝 펼쳐지는 발레 치마를 입었습니다. 패션 감각이 전혀 없어 보이지 않습니까? 여기에 제가 남성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콧수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눈썹도 막대기처럼 짙어서 ‘남자’처럼 보였습니다.
이 외모가 당시 미의 상징이었습니다. 지금의 아름다움과는 전혀 상관없는 모습이 분명합니다.
이 세상 미의 기준은 이렇게 변합니다. 어쩌면 역사상 모든 기준이 바뀌고 있지 않을까요? 결국, 지금 우리가 내세우는 기준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기준은 주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주님만이 참 진리이며, 불가능한 것이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부자들은 많은 봉헌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이야말로 하늘 나라에 곧바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주 의외의 말씀을 하십니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깜짝 놀라지요. 그렇게 많은 봉헌을 하고, 또 자선을 베푸는 사람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세상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은 세상의 관점이지만, 하느님의 자비로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것이 주님의 관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느님의 자비에 모든 것을 맡기면서 그분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만이 구원의 길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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