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 내내 가지고 있었던 고민은 ‘내가 과연 신부가 될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신부가 될 자격이 제게는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신부가 되면 교회에 큰 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과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신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 사이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신부님이 되고 싶었고 이렇게 매일 기도했습니다.
‘제가 크고 위대한 사람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두운 세상에서 작은 빛을 비출 수 있는 존재라도 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당신 도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동시에 나름으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저 자신도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함 그 자체였지만 주님의 도움으로 조금씩 성장해가면서 지금의 제가 된 것입니다. 문제는 어느 순간 신학생 때에 가졌던 순수하고 겸손했던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주님 없이도 살 수 있는 것으로 착각에 빠지면서 이상한 마음이 제 안에 생기게 되었습니다. 즉, 비판의 마음입니다. 다른 신부의 모습을 비판하고, 신자들의 모습을 비판하고, 또 교회의 모습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순수함과 겸손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이 보이지 않고, 부정적인 모습만 가득히 보이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것은 보이지 않고, 내가 받지 못한 것만 보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포도밭에서 일하는 일꾼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하루 중 서로 다른 시간에 불린 일꾼들이 나오지요. 그런데 나중에 똑같은 임금을 받게 됩니다. 이에 대해 이른 아침에 나왔던 일꾼들은 투덜거립니다. 맨 나중에 와서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한다는 이유였습니다.
분명히 공정하지 않은 처사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나 자신이 맨 처음부터 일했던 사람이 아니라, 마지막에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일꾼이었다면 어떨까요? 이 공정하지 않은 모습에 대해서 따질까요? 데모라도 해야 할까요?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고 대접해준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을까요?
처음에 주인으로부터 선택을 받아 일했던 일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주인으로부터 “일하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떠했을까요? 감사했을 것이고, 더 열심히 일해서 주인에게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처음에 가졌던 순수함과 겸손함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순수함과 겸손함은 필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토록 어린이와 같이 되라고 강조하셨던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