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교육부에서 조사한 학생들의 희망 직업 순위를 살펴보면 공무원이 꼭 들어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면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말합니다. 공무원이 되겠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꿈꾸지 않는 편안하고 쉬운 길을 선택하려는 마음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지의 공사 때문에 공무원을 자주 만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만난 공무원은 이제까지 봤던 공무원과 다른 모습을 본 것입니다. 많은 공무원이 안 되는 이유만을 찾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난 공무원은 되는 방법을 먼저 찾으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훨씬 더 좋은 쪽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성지의 공사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모습이 더 발전적으로 나아갈지는 분명합니다. 안정성만을 추구하면서 안 되는 이유만을 먼저 찾는다면 당연히 새로운 시도 자체를 할 수가 없게 됩니다. 모든 젊은이가 이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장래는 결코 밝다고 할 수 없습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실패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역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하나의 중요한 발판이 될 것입니다.
할 수 없는 이유를 찾는 삶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이유를 찾는 젊은 마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는 주님을 따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데 있어서 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야지, 할 수 없는 이유만을 찾다 보면 이 세상의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을 따를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혼인 잔치의 비유를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대받은 사람은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라는 종의 메시지를 듣고도 가지 않습니다. 밭으로 일하러 가고, 장사하러 가지요. 세상일에 몰두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혼인 잔치에 가기를 거부합니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을 부르는 이의 선물을 거절할 뿐만 아니라 그 선물을 받아들이는 이들을 박해하기까지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따를 수 없는 이유만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주님의 사랑이 가득한 혼인 잔치의 큰 기쁨을 누릴 수가 없게 됩니다. 지금의 삶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될 수도 없게 됩니다. 오히려 주님의 분노를 가져오게 되어서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혼인 잔치의 비유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주어집니다. 사랑하라는 부르심, 서로 함께하라는 부르심, 참 기쁨과 평화를 이루라는 부르심…. 그 모든 부르심에 곧바로 응답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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