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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30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8-30 조회수 : 340

지난 주일과 오늘 독서들의 내용은 아주 대조적이다. 지난 주일에 ‘메시아’로 고백된 그리스도께서 오늘 복음에서는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실”(마태 16,21) 존재로 당신을 제시하시고, 베드로는 자신의 고백으로 교회의 주춧돌이 된 반면에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반대되는 ‘걸림돌’로서 그리스도께로부터 배척을 받는 것 같다. 이러한 대립적인 서술은 그리스도 신비 자체 안에는 본질적으로 이러한 대립적 실체가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들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처럼 펄쩍 뛸 수도 있는 것이다. 
 
제1독서: 예레 20,7-9: 주님의 말씀에 저는 손을 들고 맙니다 
 
‘십자가 위의 죽음’이란 체험은 모든 신앙인의 체험이 되어야 한다. 오늘 전례에 나타나는 예레미아는 그리스도의 예형처럼 나타나고 있다. 그는 비탄에 잠긴 고백을 통하여 하느님께 표현하고 있다. 그는 고통이 크면 클수록 자신의 소명을 버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하느님은 너무나 강하신 분으로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도저히 꺼버릴 수 없는 ‘불’같은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 
 
복음: 마태 16,21-27: 자기 자신을 끊어버려라 
 
오늘 복음은 곧 다가올 주님의 수난에 대한 예고와 그에 대한 베드로의 민감한 반응(마태 16,21-23)과 십자가의 길을 통하여 ‘당신을 따라야 할’ 제자들의 의무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 있다(24-27절). 예수님의 수난예고에 대해 베드로는 예수님의 길을 막으려고 애쓴다. 이러한 인간적인 베드로의 행동은 지극히 인간적인 정이 넘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한편 이 행위는 하느님의 계획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스승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지만, 십자가와는 무관한 영광과 권세로 가득 찬 현세적 ‘메시아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23절). 
 
베드로는 자신의 신앙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세의 인간적 체계에 꿰맞추어 나름대로 합리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에서 신앙을 상실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그 신앙은 더 이상 하느님의 생각에 따르지 않고 인간의 생각에 따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23절)고 하신 것은 공생활 시작할 때, 예수를 현세적 메시아로 변질시키려 한 유혹사화(마태 4,1-10)의 사탄을 떠오르게 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앞으로 당하실 모든 것을 운명이나 숙명적 상황에 돌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하느님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뜻임을 인식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21절)고 복음은 전하고 있다. 
 
하느님의 뜻은 메시아의 수난과 미래의 영광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당할 어려움도 예견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의 길에서 떼어놓으려 했던 베드로가 이제 스승을 따라 그 같은 십자가의 길을 가야한다면 베드로에게는 더더욱 힘든 일이 아니었을까? 물론 미구에 베드로는 자신의 신앙으로만이 아니라, 고통을 당하고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기까지 스승을 따름으로써 교회의 주춧돌이 될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24절).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하였지만, 이제는 또한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오신”(마르 10,45) ‘수난당하는 종’으로서도 고백해야하며, 또한 이 고백은 자신 역시 스승의 고통스러운 운명에 연루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 그리스도를 죽음의 운명이 지워진 메시아로서 받아들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더구나 아직은 부활을 체험하지 못한 베드로에게는 참으로 큰 어려움이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25절)라고 하신다. 
 
예수님의 권고의 내용은 ‘관심’의 중심을 자신에게 두지 말고 그리스도와 이웃에게 두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이웃을 위하여 ‘자신을 잃는 것은’ 곧 ‘자신을 되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것이다.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당신 밖에 관심을 두셨고, 당신을 잃으셨으며, 또한 모든 것을 다 내어 놓으셨고(필립 2,7-8) 당신을 내던져 이웃들에게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셨지만, 부활의 영광의 생명으로 당신 자신을 되찾으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길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힐 수는 없다.그럴 필요도 없다. ‘십자가의 죽음’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자신의 의무에 충실하고 그리스도와 이웃을 위해 우리 자신을 바치고 우리를 잃어버림으로써 그리스도와 ‘이웃의 선익을 구함’(필립 2,21)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제2독서: 로마 12,1-2: 여러분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사도 바오로도 ‘십자가 위의 죽음’의 체험에 덧붙여 말하고 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1절). 자신을 이기면서 바치는 정신적 예배가 진정한 희생제물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을 버리고 포기하는 아픔을 요구한다.형제들에 대한 충실한 사랑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야 한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행위가 진정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베드로가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떠한 삶의 형태로 우리가 따르는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고백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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