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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4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09-04 조회수 : 321

친한 신부 중에 사제관에만 오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신부가 있습니다.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침실에 들어가고, 서재도 들어가고, 여기에 곳곳에 있는 서랍도 열어봅니다. 심지어 냉장고까지 열어보고서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제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저만의 공간을 침범당하는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편함을 담아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이렇게 곳곳을 뒤지는 거야? 신경 쓰이니까 자리에 앉아.”

제 말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재밌잖아!”

이 신부는 낯선 곳을 찾아보는 것이 재미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당사자인 저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너의 재미를 위해 나만의 공간이 오픈되어야 하는 거야?’

타인의 공간을 함부로 침범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침범하는 행동도 조심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요청하지도 않았는데도 간섭하고 정하려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마음을 침범하는 행동입니다. 이 간섭과 조정이 정말로 옳은 것이라도 해도, 본인이 원하지 않고 또 요청하지 않는 것이라면 오히려 큰 아픔과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따지듯이 말합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예수님의 행동에 대해 간섭하고 조정하고자 하는 마음이 보입니다. 그들은 심판관의 모습을 가지고서 예수님께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심판관이 아니라 의사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잘잘못을 지적하면서 간섭하고 조정해주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시면서 스스로 깨닫고 변화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의 모습을 따라서 이웃에게 다가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간섭과 조정이 아니라, 인정과 지지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이것이 주님과 함께 하는 모습이고,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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