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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3일 _ 김건태 루카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9-13 조회수 : 293

연중 제24주일

용서는 용서의 잣대 


[말씀]

■ 제1독서(집회 27,30-28,7)

예전에 유다인들은 주님께서 자기의 적들을 멸망시켜 복수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랐었으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복수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으며, 기원전 2세기경 집회서의 저자 벤 시라라는 현자는 복수가 아니라 용서의 필요성을 역설하기에 이른다. 이 현자는 하느님의 자비가 어떠한 것인지, 하느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지니고 계신 연민으로 가득 찬 이해심이 어떠한 것인지 터득했던 것이다.  


■ 제2독서(로마 14,7-9)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삶을 포기하고 오로지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을 위해 죽는 삶을 살도록 호소한다. 이는 영적인 참 죽음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며, 아울러 이는 참 생명의 샘에 다가서는 일이다. 이러한 삶을 살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대할 수 있으며, 남을 판단함이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 복음(마태 18,21-35)

용서에 관한 비유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은, 우리가 남의 권리를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넓게 침해하고 있는지를 일깨워 주신다. 사악한 종이 자기의 동료에게 탕감해 주기를 거절하고 있는 빚은, 주인이 그에게 탕감해 준 어마어마한 액수에 비하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100데나리온 대(對) 10,000탈렌트! 1탈렌트가 6,000데나리온과 같으니, 100對 60,000,000인 셈이다.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1데나리온을 8만원으로 계산하면, 800만원 對 4조 8000억원이 된다. 하느님으로부터 엄청난 빚을 탕감 받고 살면서도 이웃에게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새김]

■ 복수는 누구에게든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물질적인 피해만이 아니라 인격이나 존엄성이 침해될 때는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해진다는 점이 특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누구로부터 구타를 받았을 경우 육체에 가해진 타격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손상이 더 큰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와 같은 개인적인 삶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역사 또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복수의 굴레 속에 갇혀 왔으며, 각종 법규들이 이러한 혼돈 속에서 어느 정도의 질서 유지를 위해 애써 왔으나, 만족할만한 결과를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바로 그 역사가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 사람을 자기 자신의 세계 속에 가두어놓는 죄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리스도교 신자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이들에게 드러난 하느님의 자비를 의식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복수의 역사를 종식시키도록 초대받고 있다. 하느님의 사랑을 그대로 본받아 용서하는 사람으로 거듭난 사람들, 다른 이들에게 베푼 용서가 하느님으로부터 바라고 있는 용서의 잣대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용서는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받아 들여 실천에 옮기고 있는 사람들, 아니면 최소한 그 길이 바른 길임을 깨닫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교우 여러분, 이웃을 용서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의 용서를 기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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