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삶의 마지막 시간을 알고 있다면 어떨까요? 아마 계획을 세워 지켜나가며 그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해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열심히만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분이 유골함에 담겨 갑곶성지 봉안당에 모셔지게 되었습니다. 안치 전, 그분의 배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고인이 생전에 얼마나 열심히 사셨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허망하게 암에 굴복해서 주님 곁으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기억하시는 배우자인 자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펑펑 우십니다.
“좀 놀다가 가지. 그렇게 힘들게 고생만 하다가 가셨어요. 불쌍해서 어떻게 해요?”
죽음 앞에서 사람들 모두 후회합니다. 살아온 인생에 대한 후회, 특히 사랑하지 않았음을 후회합니다. 결국, 자신의 인생을 후회 없이 사는 방법은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 특히 의미를 부여하면서 사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이라 불리는 이 시간,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아직 살아있을 때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주신 사랑이라는 메시지가 더욱더 중요하게 보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이 사랑의 중요성을 오늘의 독서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1)
사랑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엄청난 금욕 생활을 하는 세례자 요한을 보고서는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라고 말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말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을 철저하게 거절하는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계획에 맞춰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계획을 제대로 따르지 않습니다. 사랑보다는 미움을, 용서보다는 다툼을, 함께 하기보다는 욕심으로 인해 혼자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느님의 계획 자체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계획을 알 수 있도록, 더욱더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