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부로부터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습니다. 10년 전에 본당신부로 사목을 할 때의 본당 신자였는데, 저를 잊지 않고 연락을 주신 것입니다. 이 부부에게는 아이가 둘이 있는데, 정말로 많이 컸더군요.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어있었고, 너무나 어린 꼬마였던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어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큰아이의 사춘기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얼마 전에 자녀의 사춘기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어느 어머니와의 대화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감사했어요. 정말로 혹독하게 사춘기를 보냈거든요.”라고 아이의 엄마가 말하는 것입니다.
종종 “우리 아이는 사춘기라는 것을 모르고 컸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축하할 일이 아니라고 많은 심리학자는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성장은 위기를 헤쳐나갈 때만 주어지기에, 사춘기가 없었다는 것은 그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위로를 받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또 한 가지는 ‘더 큰 위기’가 언젠가 찾아올 것이기에 그때 더 큰 혼란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이 아이들의 부모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혹독한 사춘기가 온 것을 오히려 감사해했습니다.
어렸을 때의 사춘기가 성인이 되었을 때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 삶의 고통과 시련의 문제에 대한 시각을 다시 갖게 합니다. 피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정면에서 부딪히고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이때 삶은 또다시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라면서,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라고 하십니다. 이는 곧 육과 영과 정신이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절제로 허리띠를 매고 선행으로 등불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주님께서 언제 오시는지 알 수 없는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라고 하시지요. 이는 인간의 세 시기인 소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의미합니다. 이 세 시기 내내 사람은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포기하고 좌절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고통과 시련의 순간에서도 주님께서 주시는 삶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새로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