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이상의 나이에도 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중년을 넘어서면서부터 몸의 근력이 줄어들고, 심혈관 질환도 생기고, 여기저기서 아프다고 아우성을 칠 것입니다. 그래서 “무병장수하세요.”라는 말이 얼마나 대단한 말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유병장수는 많아도, 무병장수는 도저히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50년 넘게 사용을 했으니 예전 같지 않은 것이 더 당연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보다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왜 내가 아파야 해?”, “내가 왜 이런 고통 속에서 힘들어해야지?” 등의 말을 하면서 불만이 가득합니다.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하고 나약함을 인정해야 새로운 변화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이제까지 누렸던 욕심과 이기심만을 계속 드러낸다면 새로운 변화, 새로운 길은 내 앞에 절대로 펼쳐질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는 겸손만이 하느님의 손길을 인정할 수 있으며, 세상의 기준에서 나오는 모든 불평불만을 내 안에서 제거하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래야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불의한 집사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주인의 관점에서, 집사의 행동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주인이 재산을 낭비하는 집사를 쫓아내려고 하지요.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집사는 쫓겨날 때를 생각해서, 주인에게 빚진 사람을 불러서 빚을 깎아줍니다. 지금으로 치면, 서류조작을 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는 행동을 더 한 것이니, 그는 커다란 벌을 받아야 마땅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과 달리, 이 주인은 오히려 영리하게 대처했다면서 칭찬합니다.
고개가 갸웃거릴 것입니다. 세상의 논리로는 받아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을 분명히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재산의 낭비를 아까워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이 만들어지는 것을 더 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집사의 예견과 사리 분별, 영리함을 배우라고 이르십니다. 우리 것이 아닌, 이 세상의 사라져 없어질 물질을 활용하여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들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욕심과 이기심만을 간직하고 있으면, 도저히 하느님의 뜻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겸손과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용의 마음만이 하느님 뜻에 맞춰서 미래를 준비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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