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날이 생각납니다. 지난 10월 1일 추석날, 갈 곳이 없었습니다. 매년 추석 때마다 형제들과 모여 부모님 뵙고 식사도 함께했는데, 올 4월에 어머니께서 하늘나라에 가시고 요양병원에 계시는 아버지께서는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면회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고향 집은 부모님이 계신 곳이고, 부모님을 만나는 곳이라고요.
군대에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부모님과 함께하지 못하는 명절이었습니다. 사제가 물론 누구와 같이 사는 것이 아니지만, 이제까지 함께했던 시간은 뒤로하고 이제 혼자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괜히 외로움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부모를 잃어야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었다는 어느 작가의 글이 생각납니다. 저 역시 성장통을 겪으면서 어른이 되어가나 봅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부모님의 자리가 얼마나 컸던 것인지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는 것이 당연하고, 이를 위해 외로움을 이겨내고 자신의 자리에서 기쁨을 찾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가 어른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어떤 이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곧바로 밖으로 뛰어나가야만 할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어머니 성모님을 너무나 사랑하셨던 예수님이 아니십니까? 그러나 어머니께서 들으시면 서운하실 수 있는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그리고 곧바로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은 당신 가족을 하찮게 여기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보다 육신보다 영혼으로 가까운 것을 더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속의 가족에 얽매여서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를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로,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실 때 가득했던 그 성령의 감도로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께 봉헌되신 것을 기리는 날입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하느님께 봉헌의 삶을 사신 성모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을 늘 마음에 새기셨고, 하느님 뜻대로 그대로 자신에게 이루어지길 청하셨습니다. 그런 성모님이라는 것을 잘 아셨기에 서운한 말씀도 과감하게 내뱉으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깨우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주님의 뜻을 기억하면서, 세속의 것보다 하느님 것을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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