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4일부터 성지 안에 봉안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운영을 시작할 때가, 사실 제 어머니께서 하늘나라에 가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장례의 중요함을 누구보다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고인뿐 아니라, 슬픔 속에 빠진 유가족을 위해서도 이 시간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안치 예식을 최대한 정성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노력 중의 하나가 새벽이나 밤에 홀로 봉안당에 내려가서 안치된 유골함 앞에 앉아서 고인을 위해 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기도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지요. 이 부분을 어느 신부님께 이야기하니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무섭지 않아?”
신부의 한자어를 보면, 귀신 신(神)자에 아비 부(父)자를 씁니다. 즉, 귀신 아버지라는 것이지요. 신부라는 호칭만 보면 돌아가신 분은 무서워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나약함을 가지고서는 두려운 마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긴 예전에 군대에서 자정에 무덤 옆에서 보초 근무를 설 때가 있었는데 정말로 무섭더군요.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무섭지 않습니다. 돌아가신 분은 살아있는 사람보다 훨씬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무서울 수가 없습니다.
무서워할 이유가 전혀 없지만 무섭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 공포가 밀려듭니다. 내가 만든 그 마음 때문에 말이지요.
주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세상 마지막 날의 징표를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잎이 돋는 것을 보고 여름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세상 마지막 순간에는 여러 징표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 마지막 순간’이라고 하니 무서울까요? 무섭고 공포의 시간이 될 것 같지만,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라고 하십니다. 세상 마지막 순간이 하느님 나라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하긴 죽음도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요.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 모습이 세상 마지막 순간을 위한 준비가 될 것이며, 하느님 나라를 맞이하는 준비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주님의 가르침과 여러 표징으로 미리 예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주님의 말씀과 표징은 하늘과 땅이 사라질지라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보여 주신 모든 것은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에 더욱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에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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