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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28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11-28 조회수 : 925
언젠가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초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친구들입니다. 43년 만의 만남이었기에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참고로 여자친구가 아니라, 모두 남자친구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반이었음은 분명한데, 기억하고 있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기억나니? 내가 너희 집에 놀러 갔었는데, 그때 네 어머니께서 아이스크림 ‘아이차’를 사주셨어.”

당시에 어머니께서 매우 편찮으셔서 친구를 데려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이 친구를 데리고 집에 갔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저 역시 기억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이 친구들 역시 기억하지 못하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습니다.

정말로 기억나지 않는 것일까요? 아니면 기억하지 못하는 척일까요? 저의 경험을 보니,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이유도 있겠지만,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종종 과거에 받은 상처로 힘들어하는 분을 만납니다. 그분들의 억울함은 자신이 이렇게 과거의 기억으로 지금까지 힘들어하는데 상대방은 그런 일이 있었던 것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 상대방이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기억 때문에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처를 준 사람으로 인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나만이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연중 시기를 마무리하는 주님의 마지막 훈계 말씀입니다. 일상생활에서 거창한 죄로 여겨지지도 않고 별로 흠 없어 보이는 행위들이지만, 당신의 임박한 재림과 갑자기 닥치는 세상의 종말을 경계하는 마음을 흐리게 만드는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을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는 누가 해야 할까요? 내 이웃이 해야 할 것이 아닙니다. 또 그런 마음을 품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하실 것도 아닙니다. 바로 ‘나’만이 가능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유의지를 주셔서 우리 스스로 해야 할 것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는 당신이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으며 당연히 해야 할 것을 남에게 책임을 지우고 남 탓을 하는 데 시간과 힘을 쏟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으로 많은 것을 주신 하느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 말씀처럼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꿈을 향해 자신있게 한 걸음 내디딘다면, 자신이 그린 삶을 살기 위해 한 가지 시도를 한다면 평범한 시간들 속에서 예기치 못한 성공을 만날 것이다(헨리 데이비드 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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