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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12-02 조회수 : 1006

성지에서 제가 진행하는 전례가 자기 본당과 다르다면서 항의(?)할 때, 또 제가 쓰는 글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듣게 될 때면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제 생활을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고 벌써 20년이 넘었는데, 전례에 어긋난 것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쓴 글이 자기 생각과 다를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항의나 부정적인 말을 듣게 되면 제 안에서 교만이 움터 나오는 것만 같습니다. 사제서품을 받을 때 겸손한 사제가 되게 해달라고 주님께 그렇게 기도했으면서도 말입니다.

사실 이런 제가 문제입니다. 성경에서 바리사이들은 자신을 선택받은 사람으로 간주해서 교만해졌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다윗 왕은 자신이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 겸손한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교만의 시작은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라는 생각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다르다는 생각에 교만이 나오고, 이 교만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없게 만들지요. 그런데 성경을 잘 보면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 나 자신이 구원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오늘 복음에서 분명히 볼 수가 있습니다.

군중이 갖가지 병을 앓고 있는 병자들을 주님께 데리고 옵니다. 군중이 주님께 이들을 데리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떤 의사도 이 병자를 고칠 수 없지만, 예수님만큼은 다른 의사와 달리 병자를 고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병자들의 믿음보다도 군중의 믿음으로 병자들의 병이 낫습니다. 심지어 별 뜻 없이 주님의 발치에 온 사람들도 병이 낫게 됩니다. 아픈 당사자가 아닌, 믿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서 아픈 당사자가 큰 혜택을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사흘 동안 굶주리고 있는 군중을 가엾이 여기셔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라고 물으시지요. 그들은 빵 일곱 개와 조금의 물고기를 내어놓았습니다. 그 결과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사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습니다.

병자들의 믿음보다 군중의 믿음으로 병자들이 나을 수 있었고, 군중이 가져온 양식보다 제자들의 가지고 있었던 모든 양식(비록 그 양은 빵 일곱 개와 약간의 물고기로 아주 적었지만)을 통해 모두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구 때문에 내가 구원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교만의 자신을 만들어야 할까요? 그들이 나의 구원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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