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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3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12-13 조회수 : 1102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연히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그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으려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참 많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예비 신자들이 이렇게 답변하는 것은 모르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세례받은 지 꽤 오래된 사람들 역시 이 마음의 평화를 말합니다. 구원을 향해 걸어가는 길에서 자연스럽게 얻는 것이 마음의 평화인데, 마음의 평화가 일순 위에 있다 보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면 신앙을 버리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본당 신부님의 강론으로 마음의 평화를 잃어서, 교우의 잘못된 모습을 본 뒤에 마음의 평화를 잃어서, 세상 것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마음의 평화를 잃었기 때문에…. 등의 이유로 마음의 평화를 잃게 하는 교회에 다닐 수 없다고 합니다. 

신앙은 단순히 세상 안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하느님 안에서 참된 기쁨과 행복을 얻기 위한 것, 즉 나의 구원을 위해서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을 위해 주님과 함께 하는 길을 걸어가게 될 때, 자연스럽게 평화도 얻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은 세례자 요한에게 그리스도냐, 엘리야냐, 예언자냐면서 끈질기게 답을 요구합니다. 그러자 요한은 단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말합니다. 소리는 사람들이 길을 제대로 갈 수 있도록 알려줍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구원의 길을 향해 외치고 싶지만,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은 단순히 그의 신원에 대해서만 묻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제들과 레위인들뿐 아니라 바리사이들도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어 묻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는 사제들과 레위인들처럼 순수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요한이 누구인지 알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올가미를 씌우는 데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베푸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지요. 

요한은 자신이 베푸는 세례에 관해 겸손하게 말하면서 자기는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기에도 합당치 않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가장 큰 겸손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주님을 세상에 외치는 소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위해 주님을 준비하는 멋진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를 다시금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부차적인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처럼 착각해서는 주님과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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