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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2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12-22 조회수 : 1311

어렸을 때는 부모님께 모든 것을 청하기만 했습니다. 나의 청을 들어주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계속 청했습니다. 청한 것을 들어주기를 바라면서 때로는 부모님을 속이는 거짓된 말까지 하면서 청했었습니다.


성인이 되면서 부모님께 더는 청하지 않게 됩니다. 이제는 부모님을 이해하며 그분들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더 부모님과 가까운 관계가 됩니다.


우리의 영성 단계도 이렇지 않을까요? 어린이와 같은 영성의 단계에서는 계속 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공갈, 협박, 거짓말까지 섞으면서 청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영성 단계가 되면 청하기보다는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을 실천하는 데 집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주님과 아주 가까운 친밀한 관계를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지금 내 영성의 단계를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어떤 식으로도 주님 앞에 나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바치는 찬양의 노래인 마리아의 노래를 묵상하게 됩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에, 자신의 비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믿었으며, 그래서 찬미의 노래를 부르고픈 마음이 강하게 일었을 것 같습니다.


성모님과 엘리사벳, 그리고 태중의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의 만남. 이 만남만으로도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구원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을 굳게 믿었으며, 하느님의 일은 항상 옳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성모님의 모습은 단순히 청하기만 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이제는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을 실천하는 단계, 그래서 아주 가까운 친밀한 관계임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찬미의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했을까요? 우리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늘 의심했으며, 너무나 이른 판단으로 불평불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청하는 것을 절대로 멈추지 않습니다. 찬미의 노래보다 슬픔의 노래를 더 많이 부르면서 주님께서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아갔습니다.


내 영성의 단계를 높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이와 같은 영성 단계가 아닌,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성인과 같은 영성 단계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역시 성모님처럼 찬미의 노래를 큰 기쁨을 담아서 부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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