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후배 신부를 어느 모임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후배 신부의 모습을 보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신부! 살이 많이 쪘네?”
워낙 왜소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신부인데, 살진 모습이 전보다 훨씬 건강해 보여서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 말에 기분이 안 좋았나 봅니다. 퉁명스럽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살 뺄 거예요.”
실수한 것 같아서, 얼른 “아니야! 건강해 보이고 보기 좋아서 이렇게 말한 거야.”라고 말했지만, 그 신부는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살쪘다는 것을 하나의 욕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게으르고 자기 조절을 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는 것이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세상의 생각이 이러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떻게든 상대의 힘을 빼는 말이 아닌, 상대에게 힘이 되어 주는 말을 하는데 더 큰 노력을 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사람의 말도 이런데, 주님의 말씀은 어떨까요? 주님의 말씀 역시 한 번 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단식 논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와 달리 단식을 하지 않고, 먹고 마시는 모습만 보여 주시는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주님의 이런 모습만 기억하면서 먹고 마시는 데에만 중점을 둬야 할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참된 단식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먹고 마시는 것도 중요함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먹는 것을 삼가는 것이 단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상의 뜻을 담고 있는 단식을 우리가 받아들였으면 하셨습니다. 즉, 음식을 삼가는 것처럼 악습을 멀리하는 것이 참된 단식이라는 것입니다.
이 악습을 멀리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지금은 기존의 단식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먹고 마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참된 단식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는 주님의 말씀은 새 천 조각, 새 포도주와 같습니다.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옛 옷과 옛 부대로는 안 됩니다. 우리 자신이 새 옷, 새 부대가 되어서 주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단식의 의미였습니다. 먹는 것을 삼가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악습을 멀리하고 주님의 새로운 말씀을 받아들여서 실천하는 것이 진짜 단식이었습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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