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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24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1-24 조회수 : 120

오늘 복음은 지난 주일에 이어 예수께서 네 명의 첫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계속되지만, 오늘의 강조점은 부르심보다 구원을 위해 회개하라는 초대에 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15절). 그 기회는 놓쳐버리면 사랑과 생명에로 개방될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영원히 상실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오늘 복음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제1독서: 요나 3,1-5.10: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였다 
 
이러한 절박성은 요나의 설교에서 니네베 사람들에게 경고되고 있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4절). 이 설교를 듣고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5.10절).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의 호소를 때를 놓치지 않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제2독서: 1고린 7,29-31: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동정'의 가치를 주님께 대한 '갈라지지 않는 마음'으로 일치하게 하는 것임을 제시한다. 하느님을 선택한다는 것은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인간생활에서 이루어지는 그 어떤 가치도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는 벽이 될 수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동정자'라는 것은 하느님께만 의지하기 위해 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유희에서 눈을 돌려 피안의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비록 현세의 이 시간 안에 살고 있으나 결정적이고 절대적 가치이신 그리스도와 결혼함으로써 이미 현세의 시간을 초월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왕국'이라 부를 수 있는 그리스도의 '충만성'을 자기 현존재 안에로 이끌어 들여 넘치게 한다. 이것은 이제 인간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 풍요성은 그것을 알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복음: 마르 1,14-20: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이제 복음을 통하여 효과적으로 고찰을 해보자. "때가 차다."(15절). 이 말씀은 시간이 밖으로부터 '차게 됨'을 의미한다. 즉 하느님께서 시간 속에 당신의 구원계획을 실현시킴으로써 그 시간을 완성시켜 주심을 의미한다. 바로 이 시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때이다. 그래서 연대기적 시간(Chrόnos)이라 하지 않고 구원의 시간(Kairόs)이라 한다. 즉 의미로 가득찬 시간이며 우리의 구원과 멸망을 가늠하는 시간이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2고린 6,2). 바로 이 순간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구원으로 가득 찬 때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15절). 이 하느님의 나라는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그것은 육화의 신비를 통해 사시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써 하느님의 현존과 능력을 사람들에게 이미 전해주고 있고 그 결과 이 세상 모든 것이 죽음까지도 그에게 복종하게 될 때(1고린 15,27-28 참조), '하느님 나라'의 통치권이 결정적으로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 '하느님의 나라'는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에 이미 들어와 있으며, 그 때문에 인간은 그곳에 들어가든지, 아니면 밖에 머물러 있든지 한 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하느님의 나라'가 거저 주시는 선물이라면,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조건하에서만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 즉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 그 '하느님 나라'에 동화할 수 있도록 하고, 필요한 모든 요구에 응답을 할 수 있어야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15절) 하신다. 
 
회개하고 믿는다는 두 개념은 내용상으로 다 같이 우리 가운데 '하느님 나라'의 도래라는 이 '새로움' 앞에 우리가 취해야 할 영적인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회개'라는 것은 정신세계의 변화 즉 우리 자신의 가치기준의 전복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 이성의 범주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상설교의 내용을 보면 그렇다(마태 5,3.10 참조). 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논리이다. 이 논리를 받아들일 때만이 가능하다. 
 
"복음을 믿어라."(15절)는 것은 그리스도께 자신을 완전히 내맡겨 그분의 구원과 생명과 사랑을 신뢰하는 것이다.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단순한 인식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복음을 통해서 제시하시는 새로운 체험을 '사는 것'이다. 여기서 복음이란 그분의 가르침 뿐 아니라, 당신의 현존을 통해 실현시키는 구원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기쁜 소식'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야말로 처음부터 항상 살고 기록해야할 영원한 복음이시다. 그분을 믿고 받아들이며 그분을 닮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18절). 이렇게 그리스도를 통해 절박하게 요청되는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일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신속한 응답의 표본이 바로 첫 번째로 당신의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에서 볼 수 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17절).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부르시는 것이나 응답이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즉시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따라 나서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아무런 미련도 남겨놓지 않은 그러한 모습이다. 
 
그들은 과거를 떠날 줄을 안다. 가족까지도 이차적인 문제가 된다. 그들은 이미 그들 가운데 와있는 '하느님 나라'에 참여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따라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었다. 이 제자들의 부르심의 사화는 어떻게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변화하고 진정으로 복음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선택의 순간이다. 예수께서 당신을 따르라고 하시려 나를 위해 다시 호숫가를 지나가시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원하시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즉시 응답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때에 우리 자신의 변화와 더불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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