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2월 14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2-14 조회수 : 2790

절망의 끝에서 하느님은 시작하십니다! 
 
 
오늘 주님을 만나 기적적으로 치유의 은총을 입은 나병 환자의 지난 인생은 참으로 혹독했습니다. 
마땅한 치료약도 없던 시절, 그의 하루하루는 정말이지 지옥같은 나날이었습니다. 
 
비참한 하루를 끝내고 차디찬 동굴 안에 몸을 눕히면서 드는 생각은 어떤 생각이었겠습니까?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빨리 주님께서 나를 데려가셨으면...차라리 이게 꿈이었으면...’ 
 
그러나 길고 슬픈 밤이 지나가면 어김없이 아침 해는 떠오르고, 강물에 비친 얼굴은 어제보다 더 심각해졌고...
죽음 같은 하루를 또 다시 맞이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던 나병 환자가 은혜롭게도 죽음 직전에 구원자 예수님을 만납니다. 
이번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젖먹던 힘까지 동원해서 간절히 외칩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르코 복음 1장 40절)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병환자의 외침은 이 세상에 가장 간절하고 열렬한 청원 기도입니다. 
이토록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 이토록 겸손하고 힘있는 나병 환자의 기도를 어찌 주님께서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사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나병 환자의 모습은 오늘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한번 잘 살아보자고 죽기 살기로 노력해보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됩니까? 
그저 다람쥐 챗바퀴 도는듯한 지루한 일상이 끝도 없이 반복됩니다. 
 
지금은 ‘난다긴다’ 하지만, 지금은 떵떵거리며 살지만, 세월은 어느새 쏜살같이 흐르고 순식간에 죽음의 병고 앞에 서게 됩니다. 
보십시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유한합니다. 
인간만사의 끝은 결국 허무입니다. 인간의 끝은 절망입니다. 
 
그러나 그 절망의 끝에서 하느님은 시작하십니다. 인간들이 모두 떠나간 후 하느님은 다가오십니다.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한결같은 분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결국 우리가 최종적으로 믿고 의지할 분은 하느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교차로에서 건강하고 순결한 예수님과 병들고 불결한 인간이 만났습니다. 
고상하고 맑은 정신의 예수님과 좌절과 원망뿐인 한 인간이 만났습니다. 
위엄으로 가득 찬 영광의 예수님과 바닥에 무릎을 꿇은 한 사람이 만났습니다.  
 
빛과 어둠이 만났습니다. 생명과 죽음이 만났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인간의 비참이 정면으로 마주쳤습니다. 
참으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존재의 만남입니다. 
 
그 결과는 마치 갓 태어난 아기 피부처럼 보송보송하고 깨끗한 피부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자비하신 하느님의 얼굴과 대면할 때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 순간은 참으로 축복된 순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면서 지은 모든 죄와 허물, 어둠과 상처는 하느님 자비의 얼굴과 마주치는 순간, 활활 타오르는 화로 위에 던져진 눈송이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인간의 비참은 사라지고 하느님의 자비와 영광만 남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한 가지 노력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터치(touch)를 가져오는 간절함이요 절박함입니다. 
겸손함과 강렬함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는 철저하게도 희망의 종교입니다. 
아무리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이 혹독하고 비참하다 할지라도, 때로 더 이상 나아갈 의미를 못 찾는다 할지라도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합니다.  
 
단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할지라도 하느님의 현존과 자비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