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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4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3-04 조회수 : 3147

3월 4일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예레미야 17,5-10
루카 16,19-31
 
주님 제게 대체 왜 이러십니까?
어찌하여 저를 이토록 힘들게 하십니까?

 
 
삶이 고달플 때 마다, 고통이 쓰나미처럼 밀려올 때 마다, 하느님이 원망스러울 때 마다 펼쳐보는 최애(最愛) 성경이 있습니다.
예레미야서입니다.
어린 시절 소명에 불린 예레미야는 평생토록 고통을 친구처럼 끌어안고 살았던 예언자로 유명합니다.
 
예레미야 예언서를 천천히 읽어 나가다보면 저절로 큰 동정심과 측은지심이 밀려옵니다.
자연스레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고통은 별 것도 아니로구나, 하는 위로도 다가옵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너무나 극심해 견딜수 없을 것 같을 때, 신기한 해결책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더 큰 고통을 목격할 때입니다.
그런데 고통의 가장 끝에 서 계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최초로 소년 예레미야를 부르셨을 때, 그는 너무 두렵고 떨려 완강히 거절하려 했습니다.
“아, 주 하느님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예레미야서 1장 6절)
그래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마음 내켜하지 않는 예언자’로 알려졌습니다.
 
불림을 받자 마자 시작된 예언자로서의 삶은 참으로 혹독했습니다.
친구들은 또래들과 어울려 들로 산으로 놀러다니고 있을 나이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고관대작들 앞에서, 수많은 백성들 앞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해야 했습니다.
 
전달해야 할 하느님의 말씀이 듣기 좋은 말씀, 덕담, 칭찬과 위로의 말이었으면 득달같이 달려가서 예언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전하라고 하신 말씀은 지도층 인사들의 타락과 우상숭배를 고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거듭된 배신과 불충실에 따른 왕국의 파괴와 멸망을 예언해야만 했습니다.
 
너무 어린 예언자였던지 사람들은 무슨 핏덩어리가 와서 소란을 피우나? 하고 무시했습니다.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송이가 왜 자꾸 시끄럽게 하는가? 하며 웃었습니다.
 
말빨이 제대로 먹히지도 않고, 가는 곳 마다 천대받고 무시당하던 예레미야 예언자가 하루는 얼마나 괴로웠던지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아, 불행한 이 몸! 어머니, 어쩌자고 날 나으셨나요? 온 세상을 상대로 시비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 사람을.
빚을 놓은 적도 없고 빚을 얻은 적도 없는데 모두 나를 저주합니다.”(예레미야서 15장 10절)
 
“제가 날마다 놀림감이 되어 모든 이에게 조롱만 받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저에게 날마다 치욕과 비웃음 거리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서 20장 7~8절)
 
그러나 예레미야는 예언자이기에 겪어야만 했던 그 혹독한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에 꾸준히 순명했습니다.
아직 어렸기에 틈만 나면 “주님 제게 대체 왜 이러십니까? 어찌하여 저를 이토록 힘들게 하십니까?” 하고 부르짖었지만, 결코 예언직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 길을 걸었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의 생애는 거듭되는 고통과 시련 속에 살아가는 오늘 우리에게 큰 위로와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거듭된 시련과 실패를 통해 예레미야 예언자를 성장시키셨고, 튼튼한 당신의 종으로 거듭 나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생애를 통해 실패를 통해서도 성공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는 동시에, 분명 우리 생애 안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처참한 실패에서 성공에로 이끄시는 분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실패를 이용해서 우리의 상처를 영광의 배지로 바꿀 수 있는 분이십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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