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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9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3-09 조회수 : 3077

불가능해 보이는 용서이지만 하느님 은총에 힘입어 가능해집니다!


복음서를 읽고 묵상하다보면 우리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자동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도 극진히 사랑하신 나머지, 언제나 우리가 좀 더 잘 되기를, 우리가 좀 더 큰 나무로 성장하기를, 우리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촉구하시며 격려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진한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애틋한 사랑이 없다면 관심도 없습니다. 관심이 없으면 어떻게 하든, 무얼하든 신경쓰지 않습니다. 성장이나 변화나 회개는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애지중지하시다보니 언제나 자극하시고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만 해도 그렇습니다. 아마 베드로 사도가 수제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어떤 다른 제자로 인해 큰 상처를 받았던가 봅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중심에 두고 가장 치열한 경쟁자였던 요한 사도, 아니면 이미 마음이 딴데로 가 있었던 배반자 유다가 아니었을까? 짐작은 갑니다.


아무튼 제대로 한번 크게 언쟁을 했던지, 화가 잔뜩 난 베드로 사도가 씩씩대며 스승님께 와서 묻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오 복음 18장 21절)


베드로 사도는 한두번도 아니고 일곱번 용서면 충분하겠지? 생각하고 넉넉잡아 말씀드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각은 베드로 사도의 생각을 완전히 뛰어 넘습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오 복음 18장 22절)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위 말씀을 통해 베드로 사도와 오늘 우리에게 초대장 하나를 내미신 것입니다. 용서의 사도직을 실천하라는 초대장입니다.


나자렛에서의 오랜 숨은 생활을 통해 한 인간으로서의 산전수전을 다 겪으셨던 예수님께서는 인간 관계 안에서의 기쁨과 슬픔, 고통과 상처를 몸소 체험하셨을 것입니다. 그 체험을 바탕으로 용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깊이 깨달으셨을 것입니다.


용서 없이 활기차고 역동적인 신앙생활이 없다는 것, 용서없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은총이나 축복도 없다는 것, 용서없이 삶의 기쁨이나 보람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그 어려운 용서의 장으로 우리를 초대하신 것입니다.


저 역시 그 오랜 세월 성찰하고 기도해왔지만 아직도 용서가 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있습니다. 참으로 힘든 일이 용서하는 일입니다. 백번 천번도 더 용서하자고 다짐하지만, 말처럼 쉽게 되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니 우리 인간의 힘만으로는 부족한 일이 용서입니다. 저 위쪽의 도움, 하느님 은총에 힘입어 불가능해 보이는 용서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결국 용서에 앞서 가장 중요한 노력은 간절한 기도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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