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8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이사야 50,4-7
필리피 2,6-11
마르코 14,1―15,47
수난과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특유의 유머 감각을 마음껏 발휘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추종자들은 스승님께서 만왕의 왕이요 세상의 구원자로서 그에 걸맞은 화려한 입성을 잔뜩 기대했습니다.
멋진 한쌍의 백마가 이끄는 화려한 마차를 타고 입성하시지 않을까 꿈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다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 계획이 참으로 의미심장하고 꽤나 코믹합니다.
예수님의 왕권에 대한 허황되고 그릇된 기대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셨습니다.
“너희 맞은쪽 동네로 가거라. 그곳에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는 것을 곧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을 풀어 끌고 오너라.”(마르코 복음 11장 2절)
예수님이 선택한 입성 수단은 준수하게 생긴 백마가 아니라 어린 나귀였던 것입니다.
언젠가 해외여행 중에 나귀를 타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 마주하는 순간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이건 말도 아니고 말이 아닌 것도 아니고. 생긴 것도 작고, 볼품없고, 생뚱맞게 생겼더군요.
나귀를 모는 소년과 제가 녀석의 등에 올라 비탈길을 오르는데, 얼마나 힘겨워하는지 불쌍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계속 헥헥 대는데, 이러다 고꾸라지지 싶어, 내려서 걸어올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심을 통해 세상 사람들의 세속적인 기대와 갈망을 여지없이 뭉개버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정치적 해방자가 아니라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어린 나귀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가장 크고 존귀하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님께서 가장 작고 볼품없는 어린 나귀를 타고 하느님의 도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다는 것, 크고 휘황찬란한 것들만 선호하는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큰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장면은 즈카르야 예언자의 입을 통해 미리 예언된 바 있습니다.
“딸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딸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즈카르야서 9장 9절)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지만 제자들과 군중들은 큰 존경과 예의를 표하는 의미로 겉옷을 벗어
나귀 등에, 그리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실 길 위에 깔았습니다.
“제자들은 그 어린 나귀를 예수님께 끌고 와서 그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얹어 놓았다.
예수님께서 그 위에 올라앉으시자, 많은 이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다 깔았다.
또 어떤 이들은 들에서 입이 많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깔았다.”(마르코 복음 11장 7~8절)
그리고 마치 예수님을 호위하듯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따라가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는 복되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마르코 복음 11장 9~10절)
호산나는 히브리 말로 ‘hoshiah-na’, ‘지금 즉시 구원하소서!’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당시 군중들이 익히 알고 있던 외침, 구원과 도움을 바라는 외침이었습니다.
당시 이 시편은 유다 큰 축제 때마다 불려졌습니다. 과월절 새끼 양이 성전에서 도살될 때, 각 가정에서 파스카 예식을 행할 때 불려졌습니다.
어린 나귀! 창조주 하느님의 외아들이요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타시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동물입니다.
수난과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특유의 유머 감각을 마음껏 발휘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탄생 때 부터 시작해서 죽음의 순간까지 시종일관 계속된 예수님의 겸손, 아래로의 행보가 돋보이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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