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3월 30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3-30 조회수 : 3124

우리의 죄가 아무리 크다해도 하느님의 자비를 능가할수 없습니다!


예수님 제자들 가운데 두 배반자의 명암이 극명하게 비교·대조되고 있습니다. 두 제자의 차이는 딱 한끗 차이였는데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한 제자는 배신의 죄책감에 따른 비참한 자결로 인해 인류 역사 안에 세세대대로 부끄럽고 수치스런 이름을 남겼습니다. 반대로 다른 제자는 절절한 회개를 통한 참 제자로의 거듭났으며, 그를 통해 역사 안에 영원히 존경받는 수제자로 이름을 아로새겼습니다.


그러한 결과가 초래되기까지 유다가 지니고 있었던 치명적인 약점이 한 가지 있었으니...스승님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얼마나 관대하고 너그러운 분이신지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크신 자비를 믿지 않았습니다.


유다는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인지를, 흠결 투성이요 죄의 종합셋트인지를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유다나 우리나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머리칼보다 많은 죄속에 넘어지고 또 일어서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한 인간 존재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망각했습니다. 인간의 죄가 아무리 크다해도 하느님의 자비를 능가할수 없다는 진리, 하느님의 자비 앞에 불가능은 없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 말종으로 손가락질 당하던 세관장 자캐오에게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평생 죄란 죄는 다 짓고 살아온 우도의 급회개 앞에 직천당을 확증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자비가 우리 인간의 죄를 훨씬 능가하고 초월한다는 증거는 복음서 여기저기에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스승님의 크신 자비를 믿지 않은 유다의 운명은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유다는 스스로를 셀프 단죄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단죄하지 않으셨는데도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유다 자신을 용서할 기회조차 드리지 않았습니다.


유다와 정반대의 행보를 걸은 행운아가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입니다. 그 역시 유다 못지않게 큰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즉시 자신의 죄를 뉘우쳤습니다. 


베도로 사도는 결정적인 순간 스승님을 세번이나 배반하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잘못을 저절렀지만, 큰 용기를 내고 가슴을 쾅쾅 쳤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록 자신이 아무리 큰 죄인이라 할지라도 스승님께서 자신을 용서해주시고, 다시 한번 제자로 받아주실수 있는 자비하신 분임을 굳게 믿었습니다. 


반면에 유다는 스스로를 용서받지 못할 죄인으로 단죄해버렸습니다. 가장 큰 실수를 범한 것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청하기만 한다면 백번 천번이라도 용서해주실수 있는 분인데, 거기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비참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수 없었지만, 영원불변의 진리 한가지를 늘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스승님은 자비로 충만한 분이라는 진리를 말입니다. 스승님은 죄인의 회개를 가장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베드로 사도는 세번 배반이라는 참혹한 현실을 딛고 당당히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용서받은 죄인이 된 베드로는 동료 죄인들을 기꺼이 품어안을 수 있는 가슴 넉넉한 수제자로 거듭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