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 때까지 저 자신을 올빼미형 인간이라 생각했습니다. 밤이 되면 점점 정신이 또렷해지고, 아침에는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면서 정신을 못 차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침형 인간은 절대로 아니라고 확신했습니다.
신부가 된 후, 어느 교육에 참석해서 새벽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소중함을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기 힘들었지만, 자명종 시계 몇 개를 머리맡에 두고서 억지로라도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현재, 아무리 전날에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5시 전에는 일어납니다. 20년 이상을 이렇게 변함없이 살았기에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지금껏 우리가 꾸준히 해왔던 어떤 행동에는 습관이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듀크 대학교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우리 행동 중 40%는 의사결정이 아니라 습관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자신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나쁜 습관을 하나하나 좋은 습관으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담배를 몇십 년 동안 펴오셨다는 분이 어느 날 보니 담배를 완전히 끊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불가능한 것인 줄 알았는데, 몇 달 동안 계속해서 피우지 않다 보니 별것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것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나쁜 습관을 버려야 주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된 의심과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잘못된 습관으로 주님과 가까워지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런 잘못된 습관이 있었습니다.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도 믿지 못했습니다. 물론 부활은 분명 믿기 힘든 사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되살리는 부활의 표징을 미리 보여주셨고, 공생활 중에 당신의 부활을 자주 언급도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믿지 않습니다. “그럴 수 없다.”라는 단정이 주님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믿지 않았던 토마스 사도를 향해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하시는 강한 메시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현을 목격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지 않고도 믿어야 하는 상황은 바로 우리를 향한 것이 아닐까요?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만이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변화를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의 기쁜 소식을 몸과 마음을 느끼면서, 이 세상을 더 힘차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이 나의 좋은 습관이 되어서 더욱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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