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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4-23 조회수 : 2628

내가 속한 세상은 내가 먹는 ‘살과 피’(뜻)가 내리는 세상
 
 
오늘 복음도 예수님께서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말씀하시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라며 서로 논쟁하고 다툽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생명체는 창조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 없이는 생존할 수 없음을 잘 압니다.
 
아기가 어머니 태중에서 어머니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살 듯, 모든 피조물은 자신을 창조해 준 창조자의 태중에서 창조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생존합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고 하늘의 법칙입니다.
 
자동차가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기에 그 만든 사람이 주는 연료와 돌봄을 통해 생존하고, 스마트폰도 창조자가 잘 관리해주고 충전을 시켜주어야 제 역할을 다 합니다.
그런데 자동차에 들어가는 연료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전기는 주인의 살과 피입니다.
그만큼 고생해서 번 돈으로 그것들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인간도 참 창조자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살과 피를 양식으로 먹고 마시지 않으면 마치 버려진 자동차 안에 짐승들이 집을 짓는 것처럼, 혹은 버려진 스마트폰을 원숭이가 무언가를 깨는 데 사용하는 것처럼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창조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는 피조물은 창조자의 의도가 아닌 헛된 삶을 삶으로써 인생을 망치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뱀을 구워 먹은 적이 있습니다.
동네 형들이 쥐를 먹고 소화가 되지 않자 땅 구멍으로 들어가지 못 한 뱀을 잡았습니다.
형들이 저에게 소금을 가져오라 하고는 뱀의 껍질을 벗겼습니다. 
제가 집에 달려가 소금을 가져왔더니 형들이 이미 뱀을 불에 구워놓았습니다.
저는 먹기 싫었지만 그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서 아무렇지 않은 듯 먹어야만 했습니다.
 
얼마 뒤 시장에서 약을 파는 사람을 어머니와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쭉 앉아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더니 저를 나와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떤 약을 하나 주었습니다.
그리고 20분 정도 지났을 때 바지를 내려보라고 했습니다.
초등학생이라 창피한 것을 알았기에 많은 사람 앞에서 내리기를 주저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팬티까지 내렸습니다.
그랬더니 길고 흰 회충 몇 마리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사람이 회충을 발로 밟자 그 안에 또 회충 새끼들이 가득했습니다.
정말 끔찍한 장면이었습니다.
 
아마도 뱀을 먹었을 때 그 회충이 제 몸속에 살게 된 것 같습니다.
뱀을 먹었던 것은 생존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공동체에 머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주는 음식을 먹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이 사실을 말씀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 반대하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먹는 양식이 있는 곳에 나도 머무릅니다.
우리가 부모의 양식을 먹고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이렇듯 뱀의 뜻을 따르게 되고 뱀에 의해 나 자신이 잠식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시 부모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자아가 죽고 부모의 뜻이 나를 살립니다.
 
사람은 누군가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는데 부모의 뜻을 따를 수 없을 때는 자기의 뜻대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기생충 같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유익한 사람이 되려면 그 자아를 죽여줄 양식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그 양식이 주어지는 곳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우리 안의 자아를 죽여 그것이 만드는 세상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합니다.
이것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로 나오는 과정과 같습니다.
아이가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누구의 뜻을 따르겠습니까? 뱀의 뜻을 따릅니다.
 
모세가 들고 내려온 십계명 판은 곧 하느님의 뜻을 의미하고 만나를 의미하며 하느님의 살과 피를 의미합니다.
또한, 생명 나무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먹기를 거부한다면 내가 하느님 뜻을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 뜻을 따라야 하므로 우상 숭배자가 됩니다.
 
광야는 하느님의 자궁입니다.
하느님의 자궁에서는 하느님의 양식이 탯줄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그 탯줄이 교회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양식을 먹는 이는 이집트에 머물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양식은 광야에서만 내리기 때문입니다.
 
만나는 하느님의 살이고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하느님의 피입니다.
광야에서 하느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이집트에서 영원히 파라오의 노예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광야는 ‘세속-육신-마귀’의 욕구로부터 자유로운 곳입니다.
그러니 모기나 기생충 같은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는 광야에서만 창조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까요? 부모의 살과 피로 삽니다. 태아에서부터 그렇고 세상으로 나와서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하느님의 자궁과 같습니다.
그러나 영양을 공급받고 안 받고는 우리 자유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를 아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십니다.
그 안에 나를 이기는 뜻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나에 사로잡히면 마치 떨어져 나간 포도나무 가지처럼 말라서 버려집니다.
 
사람은 창조자의 살과 피로 삽니다. 내가 지금 먹고 마시는 양식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분명 그 힘으로 살고 있을 것이고 그 힘이 흘러나오는 세상에 머물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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