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4월 26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4-26 조회수 : 2761
복음 요한 10,1-11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글을 써야 하는데 도무지 써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노트북과 책 몇 권을 들고서 카페를 찾아갑니다. 익숙한 제 방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 가면 써지지 않던 글의 실마리를 찾게 됩니다.

그날도 글이 써지지 않아서 카페를 찾아갔습니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가지고 간 노트북과 책을 펼쳐놓는데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친한 신부의 문자였습니다. 다음은 그 신부와의 대화 내용입니다.

“뭐 해?”

“일해.”

“어딘데?”

“카페.”

“일하는 것 아니네. 쉬는 거네.”

글 쓰는 것은 제게 일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카페에 앉아 있다는 것을 친한 신부는 노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어디에 있느냐보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를 봐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저 역시도 이런 식으로 섣부르게 바라보고 판단할 때가 많았음을 반성합니다.

사람에게도 또 하느님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면서도 이러쿵저러쿵 많은 말을 하는 우리였습니다. 그 판단이 맞을 때도 있겠지만, 틀릴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좀 더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목자는 양들을 따라가기보다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양들이 헤매게 두지 않고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모읍니다.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이런 모습으로 양들인 우리를 인도하고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착한 목자의 역할을 가장 성실하게 이행하십니다. 그렇다면 양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실하게 착한 목자의 임무를 수행하는 목자를 따라서 우리 역시 성실히 주님을 따르는 착한 양이 되어야 합니다. 양들은 자기들 목자의 소리만 들을 뿐 낯선 이의 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목자이신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겸손입니다. 판단하고 단죄하는 역할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주님의 뜻을 따라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이런 역할에 충실한 이에게만 주님께서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관계의 열쇠.


정치인 벤저민 프랭클린에게는 자신을 적대하는 경쟁자가 있었습니다. 프랭클린은 이 경쟁자와의 관계를 늘 풀고 싶었지만 어떤 방법도 소용이 없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편지를 써서 정중하게 부탁을 하나 했습니다.

“당신이 소장한 책 한 권을 빌려주십시오.”

그는 곧바로 책 한 권을 받았고, 며칠 뒤에 고맙다는 메모와 함께 돌려주었습니다. 그 뒤 경쟁자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백악관에서 만나면 그 경쟁자가 먼저 예의를 갖춰 인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둘은 평생 진한 우정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경쟁자가 마음을 연 것은 프랭클린이 먼저 도움을 청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누군가가 도움을 청하면, 상대방이 내게 ‘친화적 동기’가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때 자연스럽게 친밀감이 느낄 수 있게 되고 기쁜 마음으로 도와준다는 것이지요.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낮춰서 무엇인가를 먼저 부탁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겸손과 용기가 관계의 열쇠가 됩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