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이란 어떤 특정 대상에 대하여 실제 체험에 앞서 갖는 주관적 가치 판단이라고 말합니다. 선입견 없이 받아들여야 그 대상의 고유함을 발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입견을 고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구치소에 가서 특강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얼굴에 짙은 흉터가 있고 우락부락한 사람들이 강의를 듣기 위해 앉아 있을 것 같았습니다. 또 제 강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화를 내지는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저의 잘못된 선입견이었습니다. 그들의 인상은 저보다 더 좋아 보였고, 부족한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셨습니다.
구치소 안에서의 강의를 통해 제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선입견을 부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선입견을 부수는 방법은 직접 마주했을 때만 가능했습니다. 만약 마주하지 않고 피하려고만 한다면 부정적 생각의 선입견을 절대로 없앨 수가 없습니다.
늘 사랑이라는 긍정적 마음으로 직접 마주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 과정 안에서 선입견을 없애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그렇게 필요한 사랑의 마음은 절대로 생기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선입견 없이 사랑으로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시지요.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주님의 이름으로 청할 수 있으며, 이 청을 통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선입견을 사랑을 잃어버리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나의 청을 들어주실까?’, ‘이를 받을 자격이 과연 나에게 있을까?’, ‘하느님께서 과연 계시는 것일까?’ 등의 물음으로는 사랑을 간직하지 못하게 됩니다.
부모의 사랑에 대한 의심이 전혀 없는 아기를 떠올려 보세요. 아기는 부모에게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청합니다. 이렇게 청한다고 부모가 화를 내고 절대로 청하지 말라고 혼을 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모습도 부모는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청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만으로도 충분한 자격이 주어집니다.
주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은 어떤가요? 부정적인 선입견을 모두 벗어던지고 사랑 그 자체만을 바라보셨으면 합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