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자녀는 부모의 품을 너무나 좋아하고 편안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품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아이는 펑펑 울게 됩니다. 이런 아이를 가리켜서 낯을 가린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아이가 안전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그 안에서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한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자신의 실수를 나누는 것입니다. 실수를 말할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커다란 편안함과 안전감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의 실수를 나누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사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여기에 이 실수를 받아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도저히 지금을 살 수 없게 됩니다. 즉, 나의 실수를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이미 이 땅에 온 하느님 나라를 묵상합니다. 그 나라는 실수를 나눌 수 있는 사랑 가득한 곳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것 같습니까? 실수를 받아들입니까? 조금의 실수에도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모습은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서 지워나가는 것이 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은 무엇일까요? 타인의 실수도 받아들이고 또 나 자신의 실수도 편안함을 느끼고 드러낼 수 있는 관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하느님 안에서 하나를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를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당신 스스로 이 세상을 떠나실 일을 내다보시면서, 이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주님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더군다나 세상은 이들을 미워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주님을 따르는 사람을 미워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활동하셨지만, 세상과 절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의 정반대 편에 서 있는 사랑만을 말씀하셨고 또 당신의 몸으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상의 뜻을 따르면 편하고 쉬운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참 행복에 이르기를 원한다면 세상의 뜻을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거룩해지기를 하느님 안에서 진정한 일치를 이루기를 기도하십니다. 이 기도에 맞게 우리도 그런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지길 바라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커다란 편안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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