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0일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복 음 : 루카20,27-40
진정으로 살아 있는 존재는 몸도 살아 있지만 영혼도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즐겨 찾는 단골 수로 낚시 포인트에 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유유히 수면 위를 날아다니던 백로 한 마리가 수명을 다했는지 물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기분이 참 거시기 했습니다.
숨결이 끊어진 생명체를 보셨습니까? 목숨을 다한 동물을 보셨습니까? 뻣뻣합니다. 끔찍합니다. 참혹합니다.
악취가 새어 나옵니다. 거기에 더 이상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사랑도 없습니다. 희망도 없습니다.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은 가능성으로 충만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롭게 아침을 맞이했다는 것은 새 출발의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아직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복음 후반부에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루카 복음 20장 38절)
산 이들을 위한 살아계신 하느님께서 이 아침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리라 확신합니다.
“새 생명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노라. 어제를 잊고 새롭게 살아가거라. 죄로 얼룩진 과거는 내게 모두 맡기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거라.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아, 그 어떤 모습이든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사랑받기 충분하단다.
살아있는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은 내 기쁨이고 내 희망이며 내 행복이란다.”
숨 쉬고 있다고, 목숨 붙어있다고, 다 살아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살아 있기 위해서는 참으로 살아야 합니다. 참으로 산다는 것은 죽어야 가능합니다.
매일 매 순간 죽어야 가능합니다. 알량한 내 자존심에 죽고, 평생 따라다니던 죄책감에 죽고, 어두웠던 지난 방황의 날들에 죽고, 오랜 상처에 죽고...
때로 의구심이 들 때도 많습니다. “오늘 내 삶이 이토록 구차스러운데, 오늘 내 인생길이 이토록 가시밭길투성이인데, 이런 내 삶이 대체 무슨 가치와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노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질에 대한 지속적 반성과 성찰입니다.
오늘 나는 참으로 살아 있는가? 열심히 숨 쉬고 삼시 세끼 제때 밥 먹으며, 분명히 살아 있지만, 이미 내 안에서 어떤 것들이 죽어버린 것은 아닌지? 육체는 버젓이 살아 있지만, 영혼이나 정신이 이미 소멸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그래서 더욱더 노력해야겠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들의 육체는 점점 노쇠해지고 소멸되겠지만, 우리들의 영혼과 정신은 더욱 견고해지고 강건해질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들이 아무리 열악하고 비호의적이라 할지라도, 또 일어서고 또 넘어서겠노라고.
진정으로 살아 있는 존재는 몸도 살아 있지만 정신도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육체도 살아 있지만 영혼도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결국 주님 안에, 그분의 성령 안에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오늘 내 앞에 펼쳐질 하루하루가 시련과 상처투성이뿐일지라도, 기꺼이 견뎌내고 이겨내면,
언젠가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광스런 부활의 삶에 직접 참여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고, 또 다시 힘을 내야겠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하느님 앞에 진정 살아 있는 자로 굳건히 서 있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하느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은 모두 살아 있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조차도 하느님 앞에 있다면 살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오직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오직 이 목적을 위해 살도록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자 노력할 때, 우리는 결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