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 등반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암벽을 오를 때 온 힘과 정신을 다 기울이지 않고 절반 정도만 쓴다면 어떻게 될까요? 큰 위험을 겪을 수 있고, 암벽을 제대로 오를 수 없을 것입니다. 환자를 수술하고 있는 의사 선생님이 온 힘과 정신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환자가 큰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일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부차적인 것에 오히려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가장 중요한 일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서 절대로 외면해서는 안 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일을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때가 참 많습니다.
사실 우리가 오늘 기념하는 성모님께서 세상의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했다면, 우리 모두의 구원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나자렛은 구약성경에 한 번도 언급되어 있지 않은 보잘것없는 촌락이었고 역사가 요세푸스의 글에도 도외시된 촌락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예언자도 배출시키지 못한 곳, 이곳에서는 하느님 운운할 필요도 없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무슨 좋은 소식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곳에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배출될 것이라는 엄청난 소식을 가지고 하느님의 심부름꾼 대천사 가브리엘이 연약한 10대 소녀 마리아를 찾아왔습니다. 당시에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와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에게는 그들의 인생 자체가 치욕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 결혼해야만 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처녀 잉태의 소식을 듣습니다. 이는 인간 사회에서 불미스럽고 치욕스러운 일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들 사이에서 치욕스러운 것을 하느님은 영광스럽고 위대한 일을 완수하는 데 사용하십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의 약속을 보증하는 표로 하느님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방식을 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인간의 힘으로 가능은 하지만 부도덕으로 인정되는 경우를 선택하셨습니다. 이때 당사자의 온전한 자기 포기와 하느님께 대한 신뢰심과 완전한 겸손이 요구됩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기준을 따랐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기준을 따르면서 주님의 구원계획에 동참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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