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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1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2-11 조회수 : 928

작년에 어머니께서, 그리고 올해에는 아버지께서 하늘 나라에 가셨습니다. 한동안 커다란 상실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실감에서 오는 슬픔, 또 하늘 나라에 가신 부모님을 떠올리며 이 세상 삶의 무상함도 크게 제 마음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죽을 텐데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할까?’ 
 
삶에 대한 묵상을 하게 됩니다. 삶은 순간의 기쁨이 모여 행복을 만들고, 순간의 만족을 통해 만족스러운 삶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최신형 스마트폰을 구입 한 직후는 만족도가 높습니다. 그러나 그 만족도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부질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예를 들어봅니다. 멋진 노을을 바라보며 감탄합니다. 그런데 이 노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부질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할까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 찰나의 즐거움이 모여서 내 삶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영원히 지속되어야지만 아름다움과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으로 허무한 인생이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이 있기에 오히려 지금 순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며, 삶 자체를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엘리야가 이미 왔음을 그러나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고 하십니다. 과거의 엘리야 모습 그대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닌,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도 많은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당시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메시아관은 세속적이고 정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재림도 영광 속에 이루어지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시하는 메시아관은 고난과 부활이 함께 있는 사랑이 가득 담겨있는 것이었습니다.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모습으로만 바라보면 절대로 볼 수 없는 메시아의 모습이었습니다. 
 
삶의 순간순간이 메시아이신 주님을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막연한 영광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특별한 시간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순간의 즐거움과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 기다리기만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당신 전부를 희생하는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주님의 사랑을 과연 어디에서 느끼고 있습니까? 특별한 상황, 나의 이기심과 욕심을 채우는 상황만을 요구하지 말고, 매 순간에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순간의 기쁨이 모여 행복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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