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어느 자매의 사연을 책에서 읽었습니다. 이 자매가 한밤중에 심한 통증이 찾아왔습니다. 너무 아파서 끙끙댔지요. 어머니를 깨워 병원에 갈까 했지만, 이렇게 끙끙대도 나오지 않으시는 것을 보니 피곤하신 것 같아서 혼자서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다음 날 저녁, 어머니에게 어젯밤 너무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어머니는 “알고 있었어.”라고 말씀하십니다. 딸은 기가 막혀서, “알고 있는데도 나와 보지 않았어?”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엄마가 새벽 일찍, 일 나가야 하잖아.”
딸은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엄마가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엄마의 잘못된 모습만 계속 기억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엄마도 완벽한 인간은 아니다.’
사실 완벽한 인간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단지 완벽한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일 뿐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완벽함만 요구한다면 어떨까요?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하게 되고 힘들어지는 것은 그런 생각을 하는 ‘나’일 뿐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예언자적 생활과 하느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전함으로써 예수님보다도 먼저 많은 제자가 따랐고 그 세력도 꽤 컸습니다. 그래서 헤로데가 요한을 위험인물로 여겨 체포한 것입니다.
더욱이 세례자 요한은 엄격한 영성 생활을 했고, 그의 말은 자뭇 준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사랑 중심의 말씀으로 한없이 부드럽기만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의 생활은 일상생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세리와 죄인들과도 어울리고 금기의 집에도 드나들었습니다. 이 모습에 세례자 요한은 혼란을 겪었나 봅니다. 그래서 오늘 이야기에서는 감옥에서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당신이 누구신지 신분을 밝혀 달라고 질문합니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루카 7,22)
세례자 요한도 자신의 틀에만 갇혀 있어서 예수님을 알아뵐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다른 사람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주님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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