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애가 좋은 형제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형의 동생에 대한 사랑은 지극했었지요. 그런데 형이 중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동생을 불러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게 부탁을 하나 해야 할 것 같다. 내 재산을 이렇게 정리해주었으면 한다. 네가 원하는 만큼을 형수에게 주고, 나머지는 네가 가지렴.”
형이 하늘 나라에 가고 나서 재산을 정리하니 30억이었습니다. 동생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형수에게 1억을 주고, 자신이 29억을 가진 것입니다. 형수는 가만히 있지 않았고, 결국 법정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판사가 동생에게 “본인이 원하는 돈은 29억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동생은 “네. 그렇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지요. 그러자 판사는 “그러면 형수에게 29억을 주고, 동생은 1억을 가지십시오. 왜냐하면 형이 ‘동생이 원하는 만큼을 형수에게 주고, 나머지는 동생이 가지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심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 정도로 충분하다는 마음을 잘 품지 않는 우리는 아닐까요?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가지지 못한 사실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을 원한다면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성모님의 노래를 듣게 됩니다. 이 노래는 성모님께서 천사의 기쁨의 인사와 엘리사벳의 찬양의 인사를 받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 하느님이 베푸시는 사랑에 흠뻑 젖어 절로 읊은 응답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사와 엘리사벳은 성경 말씀을 인용해서 인사하였고, 성모님도 성경에 있는 말씀을 회상하면서 응답송을 읊으십니다.
성모님은 하느님께서 하신 위대한 구원사업에 감격하여 마음과 정신이 온통 하느님께 찬미의 정으로 휩싸입니다. 구약시대의 제관이며 예언자였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제1독서에 볼 수 있듯이, 아기를 못 낳는 상황에서 하느님을 통해 사무엘을 낳게 되자 감사의 예배를 드리지요. 성모님도 같은 맥락에서 온 세상 하느님의 백성의 이름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읊으신 것입니다.
만약 성모님께서 세상의 관점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면 이런 노래가 가능했을까요? 순간의 만족을 가져다주는 세상의 행복이 아닌, 영원한 만족을 가져다주는 하늘 나라의 행복을 바라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행복을 추구하고 있을까요? 성모님과 같은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참된 행복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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