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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6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2-26 조회수 : 887

싸움 상황을 연출한 후, 10명에게 그 상황을 지켜보게 했습니다. 어느 방향에서나 똑같이 볼 수 있도록 했지요. 그리고 같은 상황을 본 10명의 관찰자가 말하는 이야기가 과연 모두 일치하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이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똑같은 상황을 보고 있었으니, 그래도 어느 정도 일치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 달리 이 10명의 이야기는 모두 달랐습니다. 
 
기억은 인지 기능이지만 정서와도 깊은 연관이 있기에, 당시의 정서적 반응에 따라 기억의 내용이 바뀔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종종 왜곡과 변형이 일어납니다. 
 
이런 경험을 자주 할 것입니다. 상대방의 서운함에 너무 힘들어 어느 날 용기 내어 이야기했는데 상대방은 전혀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때 상대방이 모르는 척하는 것이라고, 어떻게 이 일을 잊을 수 있냐면서 화를 내지 않았습니까? 
 
진짜 기억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왜곡할 수 있고 변형되는 우리의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불안한 기억력으로 상대방을 평가하고 단죄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해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가정 안에서도 이런 왜곡되고 변형된 기억으로 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사랑이 충만한 가정이 아니라 불신과 미움으로 가득한 가정으로 보입니다. 그런 가정이 아닌, 우리가 원하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가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대방의 부족함을 보는데 집중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마음이 있어야지만 가능합니다. 
 
이런 성가정의 모범을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요셉 성인이 만든 가정에서 찾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아들을 성전에서 찾은 뒤에 성모님께서는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어린이로 취급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제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사명감을 자각하고 있음을 드러내십니다. 
 
이해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나 혼내기보다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합니다. 이 모습이 성가정이 되는 비결이 아닐까요? 서로가 서로를 믿는 것,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성가정의 시작이었습니다. 
 
싸움이 가득하면서, 서로를 전혀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고 믿지 않으면서 진정한 성가정이 되려는 것은 큰 욕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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