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뉴스나 방송에서 이상한 부모를 만나게 됩니다. 자녀를 학대하고, 가정에서 폭력을 가하고, 가정을 돌보는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봅니다. ‘어떻게 부모가 되어서 저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그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첫 번째 사람이지만 부족한 면이 너무 많았습니다. 하와는 귀가 얇고 즉흥적이라 유혹에 쉽게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아담은 궁지에 몰렸을 때 남 탓이나 하는 유약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 그들의 장남인 카인은 어떤가요?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앞뒤 사정 재지 않고 죄부터 저지르고, 또 책임을 지기보다 발뺌부터 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우리의 원조가 지금을 사는 우리의 모습과 별다르지 않음을 묵상합니다. 유혹에 너무나 쉽게 넘어가고, 남의 탓은 또 얼마나 많이 하고 있습니까? 온갖 핑계를 대면서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이 틀렸다는 식으로 말하는 우리의 모습을 내 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근본적으로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인 우리임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메시아의 구원 시대가 당신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선포하십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쁜 소식으로 이사야서 61장을 인용한 것은 바야흐로 그분께서 잡혀간 이들을 ‘해방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음을 나타냅니다. 즉,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 나라 안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이 땅에 오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61장은 메시아의 종말론적 구원에 관한 예언이며, 마침내 ‘주님의 은혜로운 해’에 예수님의 전도를 통하여 이 세상에 실현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날은 언제 시작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군중에게 말씀하시지요.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주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희년은 단 일회적인 사건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면서 세상에 실천해나갈 때, 구원의 시작이 계속해서 이루어집니다.
부족한 우리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의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그리고 완전하신 하느님처럼 완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우리 구원도 가까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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