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가 수업 시간에 낯선 사람과 함께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학자로, 실험을 위해 오늘 우리 학교에 오셨습니다. 박수로 맞이하겠습니다.”
힘찬 박수에 인사하며, 화학자라는 사람은 가방에서 액체가 담긴 유리병을 꺼낸 뒤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제가 연구 중인 물질로 휘발성이 강해 병마개를 뽑으면 바로 휘발됩니다. 인체에 해가 없지만, 냄새가 조금 날 것입니다. 병을 열었을 때 나는 냄새를 맡은 사람은 얼른 손을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이윽고 병마개를 열자, 많은 학생이 차례로 손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이 냄새가 정말로 싫다는 듯이 인상까지 쓰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심리학과 교수님께서는 이 사람이 화학자가 아닌 일반인이고, 액체는 그냥 증류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주변 사람의 암시를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의 말을 믿고 있습니다. 저 사람이 병 안에 냄새가 나는 화학 물질이 있다고 했을 때, 여러분은 믿었고 그래서 냄새를 맡은 것입니다.”
이런 심리적 암시는 우리 일상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주변에 누군가 하품을 하면 따라 하지 않습니까? 또 계속 기침을 하고 있으면, 자기 목도 간지러워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걸어가는 사람을 보면 자신도 똑같이 무시하고 건너갑니다.
좋은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 역시 좋은 영향을 이 세상에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힘이 되는 영향, 긍정적 영향을 주고받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요한의 제자들이 세례자 요한에게 투덜거립니다. 세례를 자기들의 고유 상표로 생각했는데, 예수님도 세례를 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자기 제자들에게 예수님에 관한 증언을 천명합니다.
신랑과 그를 축하하고 기뻐하는 신랑 친구에 비교하여 설명하지요.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며, 신랑의 친구가 그 신랑이 잘되는 것을 시기한다면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듣고 마음으로부터 축하하고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신랑이신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하며 기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랑이신 주님은 커지셔야 하고, 신랑의 친구인 자신은 작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세례자 요한의 영향으로 많은 이가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자기만 드러나는 삶을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나요? 세례자 요한처럼 세상에 좋은 영향을 전달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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