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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3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1-13 조회수 : 799

동전 던지기를 했을 때, 숫자면과 그림면이 나올 확률은 각각 어떻게 될까요? 50:50으로 똑같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림이 있는 면의 확률이 더 높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림이 있는 면이 숫자가 있는 면보다 더 볼록하게 도드라진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니 맞는 것 같습니다. 숫자와 그림은 분명히 다르므로 같은 확률이 나올 수 없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런데 이 다름을 보지 않고 막연하게 같으리라 판단합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는 모두 다릅니다. 심지어 쌍둥이도 다릅니다. 그런데 이 다름을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어? 남들도 다 하는 것을 왜 못하니? 너는 사람도 아냐!! 네가 잘못해서 그런 거야.” 등의 폭력의 말과 함께 그 다름을 틀렸다고 합니다. 

자기 시선이 잘못되었음을 왜 모를까요? 주님께서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그래서 그렇게 죄를 많이 지었음에도 그 자체도 인정해주시고 계속해서 기회를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합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르 1,41)

당시에 나병 환자는 주로 랍비를 찾아갔습니다. 나병이라는 병을 단순히 육체의 병으로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죄의 결과로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랍비만이 나병 환자를 깨끗이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병 환자는 랍비가 아닌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랍비를 통해 어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나병 환자에게 거리낌 없이 손을 대십니다. 나병 환자를 만지지 말라는 것은 율법에도 나와 있는 사항입니다. 그런데도 손을 대신 것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넘어서는 분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그분의 사랑이 어떤 원칙보다 더 위에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육신의 상처나 허물 때문에 그들을 멸시하거나 혐오하거나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혐오하고 업신여깁니다.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혐오하고 업신여깁니다. 그러나 영혼이 죄에 오염된 것을 혐오하고 업신여겨야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다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실천하는 데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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