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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5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1-15 조회수 : 1050

사람은 상대의 잘못을 잘 잊어먹지 않습니다. 인간의 나약함과 부족함으로 분명 실수도 할 수 있지만, 실수보다 잘못으로 생각하며 단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에 반해 상대의 잘했던 점은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어떤 모습을 기억하는 것이 더 유익할까요?

잘못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늘 부정적입니다. 감사하지 못하고 남 탓만 하게 됩니다. 가까워지기는 너무 먼 당신이 되고 맙니다. 이런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혼자서 잘 살 수 있을까요? 더 남 탓만을 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남이 잘못한 일에 대해 지나치게 원망하거나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은 결코 자신에게 좋지 않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호감 가는 사람의 공통점은 긍정성입니다. 이런 사람 곁에는 도움 주는 사람이 넘쳐날 수밖에 없습니다. 

인복이 있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단순히 운이 좋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만큼 잘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인복의 시작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에게 진심을 가지고 대하면 인복이 저절로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인복 많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호숫가에는 로마인들이 세워 놓은 세관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외국 상인들이 드나들던 곳으로, 유다인 상인들이 물건을 밖에 내다 팔려면 이곳을 지나야 합니다. 세관에 앉아 있던 세리는 로마인들을 위하여 그 상품에 관세를 물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리인 유다인들은 동족들의 눈에는 더럽고 치사한 민족 반역자였습니다. 이런 민족 반역자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라.”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제자 선택은 너무나 의외입니다. 지난번의 네 제자는 어부였습니다. 흙투성이의 발과 비린내 나는 손으로 사람들과 떨어져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증오의 대상인 세리였습니다. 더군다나 유다인에게는 식사 자체가 종교 예절이었기에 죄인들과 함께 식사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식사를 함께 하니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분노를 이끌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을 어겼다고 난리였지만, 예수님은 율법을 따르지 않으십니다. 대신 하느님 나라의 법을 지키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법은 율법이 아니라 사랑의 법입니다. 이 법에 따라서 주님께서는 활동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법을 따르고 있나요? 사랑의 법을 따르는 길이 결국 자기를 위한 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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