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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3일 _ 이병우 루카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4-13 조회수 : 1528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마태26,15) 
 
배반을 넘어 회개로!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놓고 수석 사제들과 흥정합니다. 그리고 흥정의 댓가로 은전 서른 닢을 받습니다. 그런 유다 이스카리옷을 두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마태26,24)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단순히 유다의 배반을 두고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배반 뒤에 유다가 행한 잘못(자살)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땀 흘리시다가 죽는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때문에 이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필요했는데, 그 도구가 바로 '마리아'이고, '유다 이스카리옷'입니다. 그러니 '유다의 배반 행위'도 하느님의 뜻 안에서 보면 '작은 도구일 뿐'입니다. 
 
유다도 배반을 하고, 베드로도 배반을 했지만,
두 배반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유다의 가장 큰 잘못은 배반이 아니라, 배반 후 보여준 절망(죄책감)이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못하고 이 절망에만 머물러 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배반 후에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자신의 잘못에서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마음을 돌렸습니다. 그래서 다시 부활했습니다. 
 
어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예수님을 배반하는 행위는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를 통해서, 나를 통해서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은 '나의 진정한 참회'와 마음을 돌리는 이들(회개하는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 때문입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처럼 배반 그 자체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베드로처럼 배반을 넘어 회개로 넘어가는 사람, 그래서 다시 부활하는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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