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부님께서 잘 아는 신자로부터 좋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전에 같이 사목활동을 했던 수녀님께서 병으로 다리 절단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활동에 제약을 느낄 수밖에 없는 다리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수녀님께서 의기소침해 있을까 싶어 곧바로 병문안을 갔습니다.
병실에 들어가는 순간, 신부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수녀님의 표정이 너무 밝은 것입니다. 같이 병실을 쓰는 모든 사람이 수녀님의 영향을 받아서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수녀님을 위해 신자들과 함께 기도한 뒤에, 수녀님께 물었습니다.
“수녀님, 힘들지 않으세요? 왜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죠? 아니 오히려 지금이 더 기쁜 것 같은데요?”
그러자 수녀님께서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신부님! 제 다리는 이미 하늘 나라로 갔어요. 나중에 제가 죽으면 조금 가볍게 갈 수 있겠죠? 그래서 아쉽지 않아요.”
다리 절단이라는 문제에 집착하고 있으면 힘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녀님께서는 이 문제를 하늘 나라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지금 삶에 만족할 수 있었고, 그 만족하는 모습에 같이 있는 사람들도 감명받아서 모두 기쁜 병실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전교가 있을까요? 자기 삶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명을 주시며 파견하십니다. 이미 제자들을 파견했던 적이 있습니다(마태 10,5; 루카 10,1 이하). 이는 일종의 실습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처럼, 부활 이후에 이루어질 결정적이고 본격적인 파견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전에는 길 잃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찾아가라고 했지만, 이번에는 모든 민족으로 확장되어 있습니다. 처음의 파견에는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거든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 버리라고 했지만, 이번에는 세례받는 사람은 구원받고 믿지 않는 사람은 단죄받을 것이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믿는 이들을 향한 표징을 뒤따를 것을 약속하시지요.
이 모든 말씀을 하신 뒤에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복음 선포가 바로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마지막 유언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가 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시해도 되는 말이 아닌, 반드시 지켜야 할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단순히 길거리에 나가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면 될까요?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수녀님처럼 자기 삶으로 그 모범을 보여줘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는 다른 하늘 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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