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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15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5-15 조회수 : 99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그리스도께서 이끄시어 완성하시는 그 ‘새로움’은 모든 경계를 초월하여, 궁극적인 해방을 기다리며 신음하는(참조: 로마 8,19) 온 세상을 포용하고 있다. 
 
묵시록은 악의 완전한 패배를 묘사하고 있다. “나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묵시 21,1). 여기서 새로움은 사물의 ‘새로움’이 아니라 인간의 새로움이다. 묵시록은 이 새로움을 천상 예루살렘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묵시 21,2). 이 예루살렘은 하느님 구원의 사랑을 영원히 거행하기 위해 세상 종말에 어린양의 주위에 모이게 될 구원받은 이들의 공동체를 암시한다. 
 
이 천상 예루살렘의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온전한 사랑으로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사랑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 예루살렘의 시민이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천상 예루살렘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묵시 21,2)라는 표상으로 제시된다. 이 때문에 구약의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와 선택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했던 혼인 비유의 주제가 나타나고 그 예언적 사상이 실현되고 있다. 이 혼인 관계는 죽음 앞에서조차 변치 않는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심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을 당신의 동반자로 포용하시는 혼인애를 들어 높여주신다. 그러기에 나머지 대목에 나타나는 기쁨의 의미도 알 수 있다.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묵시 21,3-4). 
 
복음: 요한 13,31-33a.34-35: 새 계명을 주겠다 
 
이 혼인의 계약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사랑은 양쪽에서 흘러나와 나누어져야 한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32절). 예수께서는 성부께서 당신을 기꺼이 받아주실 것을 의심치 않으신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요한 10,30)라고 하셨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이의 무한한 사랑의 관계를 드러낸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러기 때문에 하느님 현존의 징표를 일치해서 반향 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시어 당신의 현존을 확장하도록 하신다. 다른 사람들은 이제 제자들의 완전히 새로워진 사랑을 통해 그분의 현존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얘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33-35절). 예수께서는 이 새 계명을 계약으로써 제자들에게 남기시려 한다. 예수님의 이 계약도 무상의 선물이다. “새 계명을 주겠다.”(34절)의 주다라는 동사는 보통 선물을 뜻한다. 
 
그러나 어떻게 계명이 선물이 될 수 있는가? 그 계명이 어떤 의무를 부과하기보다 우리가 존재의 차원을 발견케 하고 또한 형제적 사랑을 나누게끔 되어있는 인간적이고 그리스도인적인 내적 신비를 깊이 알 수 있게 해준다면 그것은 선물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강압적으로 무엇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을 밝혀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이제 단지 하느님의 뜻만을 알아보는 일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형제적 사랑을 새 계명이라 하는가? 율법에서도 이웃 사랑을 요구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레위 19,18; 마태 22,39)는 계명을 원수들까지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시면서(마태 5,43-48) 당신의 계명으로 만드신다. 그러시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34절)고 이웃 사랑의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바로 당신이 지금 모든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수난의 길에 계심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옹졸한 마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무한히 넓은 마음을 그 사랑의 척도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형제들에게 발을 씻어달라고 하지 않고 우리 자신이 그들의 발을 씻어주는 것을 의미한다(요한 13,1-20 참조). 그러기에 우리는 ‘새 계명’이 법적인 계명의 의미가 아니라 선물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묵시록과 복음의 내용이 새로운 이라는 형용사에서 수렴되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새 계명 등등. 그러나 이 새로움은 이 세상 마지막에 가서 그 빛을 발하게 되겠지만 이미 와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리면서 아직 시간이 있을 때에, 즉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서로 나눌 수 있는 사랑으로, 그 사랑의 새로운 힘으로 교회와 사회를 활성화해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베푸셨던 사랑을 우리도 실천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분을 닮아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어 그 안에 세상을 포용하는 우리의 삶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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