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5, 26-16, 4ㄱ
크게 낮추고 크게 물러서니
혹시 지지부진한 신앙생활, 뜨뜨미지근한 신앙생활, 물에 물탄 듯한 신앙생활로 힘겨워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복음 말씀에 ‘바짝’ 귀를 기울여보시면 좋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당신께서는 떠나가시지만 곧바로 우리의 보호자, 진리의 영,
곧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진리의 영께서 우리 안에 좌정하시고 우리의 일을 보호해주실 때 우리의 신앙생활은 분명히 ‘진일보’할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우리의 보호자이자 진리의 성령께서는 우리와 너무나 ‘먼 당신’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령의 현존 체험, 역시 우리 편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가끔씩 우리가 아무런 노력도 안했는데 산들바람 한줄기가 우리 얼굴 스쳐가듯 그렇게 그분의 현존을 체험하기도 하지만, 그 역시 노력이 필요합니다.
현존 체험을 위한 ‘의식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그분의 현존을 굳게 믿는 노력, 보다 자주 그분의 현존을 자각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첫 번째 자세가 뒤로 크게 한 걸음 물러서는 모습입니다.
우리를 스쳐지나가는 사건들, 사람들과 첨예하고 맞부딪치고, 일일이 따져보고, 하나하나 손익을 계산할 때 성령의 현존 체험은 요원할 뿐입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크게 한 발자국 뒤로 한번 물러서보십시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의 좋은 느낌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웬수’같던 그가 측은해보이기 시작합니다. 끔찍하던 하루하루가 축복의 꽃길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한 결과입니다.
두 번째 자세는 크게 자신을 낮추는 모습입니다.
형제들과 산행을 하다가 잠시 쉴 때였습니다.
씩씩하게 걸어 다닐 때는 전혀 보이지 않았었는데, 바닥에 퍼질러 앉아보니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노란 작은 풀꽃 한 무리가 제 눈에 띄었는데, 그렇게 앙증맞고 예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미세했지만 갖출 것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 첩첩산중에서도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자세를 낮춰보니 그 바닥에서는 하느님 섭리의 손길, 활발한 생명의 움직임, 엄청난 성령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활동, 분명히 우리 삶 안에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분 자비의 움직임이 우리 인생을 휘감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간 세상살이로 인해 무뎌졌던 우리 영혼의 시력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진리의 영께서 우리 안에 지속적으로 머무시고 그분 이끄심에 살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 매일의 삶을 기적의 연속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고통이 은총으로, 십자가가 축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슬픔과 울부짖음이 감사의 찬가로 변화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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