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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1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2-07-01 조회수 : 1562

작년 아버지 장례 때에 집안 어른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종친회 같은 곳에 잘 나가지 않아서인지 정말로 오랜만에 뵌 것입니다. 그런데 집안 어르신 중의 한 분이 “조 신부, 올해 몇 이지?”라고 나이를 물으셨습니다. 제 나이를 말씀드리니, “참 좋을 때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삼십 대에도 또 이십 대에도 제 나이를 물으셨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참 좋을 때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보다 젊은 나이를 사는 제가 부러워서 그렇게 말씀하셨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항상 ‘좋을 때’에 살고 있음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사실 나쁠 때가 있기도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나쁠 때도 가장 좋은 시간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나이는 집안 어르신의 말씀처럼 가장 좋은 때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 좋은 때를 살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구원받기를 원하셨던 주님이시지요. 구원으로 나아가는 지금이기에 가장 좋은 때입니다.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평상에 위어 주님께 데려옵니다. 주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데리고 온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당시에는 병을 죄의 결과로 생각했었습니다. 죄를 지었기에 벌로 병을 얻게 되었다고 간주했었지요. 예수님께서는 용서의 권한이 당신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먼저 죄를 용서하신 다음에 건강을 회복시키는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이렇게 중풍 병자를 걷게 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모독하셨다는 율법 학자의 비난이 근거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맞이하고 함께하는 지금이 어떤 때일까요? 가장 좋은 때입니다. 문제는 가장 좋은 때, 은총으로 충만한 때를 살면서도 불구하고 ‘믿음 없음’으로 인해 가장 좋은 때를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믿음을 두지 못하는 율법 학자들이 오늘의 상황을 마주하면서 기뻤을까요? 아닙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시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다가와서 겸손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때를 사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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