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안식일에>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었답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랍니다
워낙 못 배운 사람들이니
안식일에
무엇은 해도 되고
무엇은 하면 안 되는지
모를 수도 있었을 겁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줄을 알고 있었지만
워낙 배가 고파서
그냥 먹었을 수도 있었을 테죠
여하튼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고
안식일 규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바리사이들에게 딱 걸렸던 거죠
허나
이 바리사이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밀 이삭을 잘라먹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선생님에게
따지고 드니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얼마나 난감했을까요
차라리 자신들을 나무라면
몰라서 그랬다고 하든지
너무 배고파서 그랬다고 하든지
어떻게든 스스로 마무리했을 텐데
다 큰 어른인데
엄마 품의 애 취급받는 것이 어쩌면
더 부끄러웠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여하튼
일을 저지른 자신들을 사이에 놓고
자신들의 선생님과
평소에 감히 상대하기도 버거웠던 바리사이들이
맞서는 상황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떻게든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이렇게 난감한 상황을 만든 것 때문에
나중에 선생님께 꾸지람을 들을지 모른다는
약간의 불안감이 밀려오기도 했을 테고요
부끄러움에 고개 숙인 제자들과
의기양양하게 노려보고 있는 바리사이들
너 나 할 것 없이 예수님을 향하고 있었겠지요
먼저 괜찮다는 듯 부드러운 눈길로
제자들을 살피시던 예수님께서
그 어느 때보다 엄하게
잘난 듯 시비를 걸어오는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답니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다윗이 무엇을 했는지 몰랐어도
안식일 사제 성전 뭐가 뭔지 몰랐어도
움츠러들었던 제자들은
옅은 웃음 머금은 안도의 한숨을
다른 무엇보다
율법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웠을
자신만만했던 바리사이들은
쓴 웃음 지으며 애써 헛기침만
참 통쾌하지 않습니까
밝은 햇살 가득한
어느 안식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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