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잘 지내시죠? 어떻게 지내세요?” 등의 말로 묻곤 합니다. 이 물음에 “너무 잘 지내고 있죠. 아주 좋아요.”라고 답하시는 분도 있지만, 이렇게 대답하시는 분도 참 많습니다.
“요즘 너무 힘들어요. 마지못해 살고 있어요. 그저 그래요….”
이 둘의 표정을 비교하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좋다며 기분 좋은 웃음을 보이는 사람 대부분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감사의 효과는 실험을 통해서도 나타났습니다.
두 그룹으로 나눠서, 한 그룹은 감사한 일을 기록하고 다른 그룹은 골치 아프고 힘든 일을 기록하게 했습니다. 3주 뒤, 감사한 일을 기록했던 사람이 힘든 일을 기록한 사람보다 의욕이 충만하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잠도 깊이 자는 것입니다. 또 감사한 일을 기록한 사람이 이웃을 향한 사랑 실천에서도 적극적이었습니다. 결국 감사하는 사람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감사할 일이 없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감사할 일을 찾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자기를 더 안 좋은 쪽으로 이끌 뿐입니다.
마르타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십니다. 여기서 ‘모셔 들였다’라는 성경 구절은 그저 ‘손님을 대접한다’라는 정도의 뜻이 아니고, ‘주님을 모시고 모든 봉사를 한다’라는 신앙적인 뜻을 지닙니다. 즉, 마르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와 반대로 여동생 마리아는 명상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마음속에 새기는 영성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당시 여성의 지위는 높지 않았습니다. 특히 공식적인 교육의 기회가 부여되지 않았고, 오로지 가사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탈무드에서도 여성에게 토라를 가르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을 볼 때,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는 것을 보고서 그 누구도 좋게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마르타가 예수님께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라고 말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질투의 마음보다는 당시 사람들의 시선을 염두에 둔 것이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필요한 것은 딱 한 가지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중요한 것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은 세상의 것들에 이것저것 신경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경청하는 사람은 그만큼 감사하며 살 수 있게 됩니다. 기쁘고 행복하게 주님과 함께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