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큰 표징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름 배웠다는 사람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예수님께 던지는 말을 한번 보십시오.
얼마나 오만불손하고 배은망덕한 말인지 모릅니다.
자신들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이었습니다.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마태오 복음 12장 38절)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신 이후, 날이면 날마다 그분께서 보여주신 모든 것이 다 강력한 표징이었습니다.
매일 당신 백성에게 건네셨던 신선하고 명쾌한 말씀이 표징이었습니다.
오랜 불치병에 시달리던 사람들, 이미 목숨이 끊어져 버린 사람들도 당신 말씀 한 마디로 일으켜세우셨는데, 이보다 더 큰 표징이 어디 있겠습니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은 또 어떻습니까?
그리고 마침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앞에 예수님께서는 ‘표징의 종결자’로 ‘사람의 아들’ 카드를 제시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의 현존 자체가 가장 극적이며,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표징임을 강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이 세상 육화 강생 그 자체, 당신의 현존 자체가 가장 큰 표징이라는 예수님 말씀을 곰곰이 묵상하다보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졌습니다.
사실 황공하고 송구스럽게도 하느님께서 자신을 극도로 낮추셔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셨다는 것,
이것처럼 큰 표징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그냥 편하게 하느님으로 계셔도 좋을 텐데, 때로 아비규환이고, 때로 냄새나고, 때로 진흙탕 같은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알면 더 송구해집니다.
그 이유는 바로 나 때문이랍니다.
정말 하찮은, 정말 보잘 것 없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랍니다.
우리 각자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천부당만부당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친히 우리 손을 잡아주시기 위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답니다.
이것보다 더 큰 기적, 더 큰 표징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 역시 그 옛날 율법학자들와 바리사이들처럼 또 다른 표징을 원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오늘도 해가 뜨고, 또 다른 하루를 선물로 받고, 또다시 생명으로 초대받은 것은 명백한 표징입니다.
죄인인 우리가 과분하게도 성찬례에 초대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영하며, 그분과 한마음 한 몸이 되는 것, 엄청난 표징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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